보도자료

[우리말과 한국문학] 벙어리장갑과 엄지장갑

2020년 ssy0805 21-03-03 503

제목: [우리말과 한국문학] 벙어리장갑과 엄지장갑

매체: 영남일보

일자: 2020-12-31

전문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201229010004254


누군가에 상처 될 수 있는 말
알게 모르게 남용되고 있어
나쁜 의도 아니었다고 해도
특정집단 부정적 인식 강화
차별 조장 표현들 경계해야 


아이와 즐겨보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한번은 수어 통역사가 나와 농인들에게 쓰면 안 되는 표현을 말한 적이 있다. 농인들은 '벙어리' '귀머거리'와 같이 언어 장애인과 청각 장애인을 낮춰 부르는 말뿐만 아니라 '벙어리 냉가슴'과 같이 관용적으로 많이 쓰는 표현을 접해도 엄청난 모욕감을 느낀다는 거였다. 이걸 보던 아이가 그럼 "'벙어리장갑'도 쓰면 안 되는 말이냐"고, "어떻게 다른 말로 써야 되냐"고 묻는다.

맞다. 아이의 작은 손에 끼여 있는 귀여운 벙어리장갑. 이것도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주는 말이었다. 아이의 질문에 여기저기 찾다 보니,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벙어리장갑을 다른 표현으로 대체하자는 캠페인이 있었던 것을 알게 되었다. 시청각장애인 어머니를 둔 한 대학생이 '엄지장갑'으로 바꿔 부르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어머니가 받는 상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아들은 자신이 제안한 대체 표현이 널리 쓰이기를 얼마나 바랐을까.

그러고 보면 우리는 알게 모르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언어적 표현들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누군가는 '벙어리장갑'은 그냥 그런 모양의 장갑을 이르는 말일 뿐, 농인들을 비하하려는 의도로 쓴 것도 아닌데 그렇게 예민하게 생각해야 하냐고 물을 수도 있다. '벙어리 냉가슴'이나 '장님 코끼리 만지듯'과 같은 말도 그냥 속담일 뿐이지 언어 장애인이나 시각 장애인을 비하하는 말이 아니라고 말이다.

하지만 나쁜 의도로 쓴 말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누군가는 상처를 받고 차별적인 느낌이 들었다면 안 써야 하는 표현이 아닐까. 일상적으로 쓰는 말이라고 해서, 나쁜 의도로 쓴 게 아니라고 해서 차별적인 표현들을 계속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해당 표현의 대상이 되는 개인이나 집단에 상처를 주는 것을 넘어, 특정 집단에 대한 차별을 조장하거나 강화하게 되고, 사회가 추구하는 평등의 가치를 위협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코로나19 확산 초기 '대구 폐렴'이라는 말을 쓴 적이 있다. 대구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이 단어를 접하고 불쾌감을 느꼈을 것이다. 대구에서 대규모 감염이 발생했다는 것에 초점을 두고 '대구'라는 지역명을 붙인 것일 뿐, 대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주려고 하는 의도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대구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 단어가 불쾌할 수밖에 없다. 이 표현은 대구라는 지역과 지역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만들고, 이 표현을 반복적으로 쓸수록 대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화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누군가가 해당 표현으로 상처를 받고, 특정 집단에 대한 차별적인 인식을 반영한다면 그 표현은 다른 표현으로 바꿔 쓰는 게 맞다.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나는 다른 사람이 불쾌해하거나 차별적인 느낌을 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가.' 애들은 어른이 하라는 대로 하면 된다는 말, 남자가 왜 이렇게 무거운 것도 못 드냐는 말, 아저씨, 아줌마는 다 그렇다는 말…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 또한 평소에 이런 차별적인 표현들을 사용하고 있다. 나이와 성별에 의한 차별적인 표현들, 반성한다.

타인에게 상처주고 차별을 조장하는 말을 무의식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항상 눈을 크게 뜨고 살펴야겠다고 생각한다. 무심코 던진 돌멩이에 개구리가 죽을 수 있듯이, 내 말이 날카로운 칼이 되어 다른 이에게 상처를 내지 않도록. 다시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는 다른 사람에게 인격적으로 상처를 주고 차별하는 표현을 쓰고 있지 않은가.'


홍미주 경북대 교양교육센터 강의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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