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우리말과 한국문학] '내로남불'의 언어학_남길임

2021년 admin 21-05-07 536

제목: [우리말과 한국문학] '내로남불'의 언어학

매체: 영남일보

일자: 2021-05-06

전문: 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210504010000460

내로남불이란 표현이 가진
촌철살인의 함축과 보편성
한국인들의 생활의 지혜와
표현의 미학을 담은 표현들
의사소통·언어생활에 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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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길임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자랑할 만한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최근 '내로남불(naeronambul)'이란 한국어 단어가 뉴욕타임스에 소개되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한국에서 지방선거가 실시된 4월7일, 해당 일자에 뉴욕타임스에 실린 기사를 직접 찾아보니, 함께 소개된 영어 뜻풀이 또한 매우 정확하다. "If they do it, it's a romance; if others do it, they call it an extramarital affair." 번역하면 '자신들이 하면 로맨스이고,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하면 외도라 한다' 정도가 될 것이다. 언뜻 보면 사자성어인 듯하게 생긴 이 단어는 누구나 알 듯이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일종의 속담(?)을 구성하는 주요 단어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말이다. 한국어 사전에는 있을까? '우리말샘'을 찾으면 '내로남불'은 등재가 되어 있고, 뜻풀이도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뜻으로, 남이 할 때는 비난하던 행위를 자신이 할 때는 합리화하는 태도를 이르는 말"이라고 되어 있다.

실제로 '내로남불'은 2015년 처음 등장한 신어로, '2015년 신어', 국립국어원 신어조사사업 결과보고서에 등재되어 있다. 대다수의 신어, 대략 70% 이상의 신어가 10년 이내로 사멸의 길을 걷는다는 통계 조사에도 불구하고 불과 5년 전에 생긴 이 단어가 '뉴욕타임스'에까지 알려지게 된 데는 이 표현이 가지는 촌철살인의 함축과 상황적 보편성에 있다. "아하" 하고 무릎을 치게 만드는 만고불변의 진리라고나 할까?

대상을 조금만 바꾸어 '내로남불'이 아닌"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하는 표현으로 이동해 보자. 이상하게도 이 표현은 사전에 등재되어 있지 않은데, 아들격인 '내로남불'이 등재된 것을 고려할 때 이상한 일이다. 아마도 이 표현이 단어가 아니라는 점, 비교적 현대에 등장한 다소 비속한 표현이라는 데에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사전에 모국어화자가 자주 사용하는 모든 단어와 표현을 찾아서 싣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새로이 등장한 신어나 새로운 표현들은 적극적으로 조사하지 않으면 흔히 누락되기 마련이다.

'골키퍼 있다고 골 못 넣냐' '안 봐도 비디오' '버스 지나가고 손 흔든다' 등은 현재 국어사전에 등재되어 있지 않지만 한국인이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고 들어봤음직한 유용한 표현들이다. 아마도 '골키퍼, 비디오, 버스' 등의 신문물이 들어온 이후 생긴 속담들이어서, 그 흔한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 갚는다' 등과 같은 유구한 역사를 가진 속담에 비해 사전에 등재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더 이상 비디오를 보지 않고, 비디오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현 세대에게는 '안 봐도 넷플**' '안 봐도 유**'라는 표현이 나와야 할까? 언중들의 생활의 지혜와 표현의 미학을 담은 표현들 중에는 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유용한 표현들이 많다.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 '유전무죄 무전유죄' '팥 없는 찐빵' '좋은 게 좋은 거다' 등.

'예로부터 민간에 전하여 오는 쉬운 격언이나 잠언'을 가리켜 '속담'이라고 하는데, 이들은 '현대 속담' 정도로 칭할 수 있을 듯하다. '유구한 역사'라고까지 평가할 수는 없으나 한국인의 생활의 지혜를 담은 이들 표현은 의사소통의 효율을 높이고 언어생활에 활기를 준다. 너무 진지하기만 한 사람이 재미없듯이, 너무 딱딱한 사전도 재미없다. 사전이 진지할 필요는 없다.


남길임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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