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우리말과 한국문학] '춘원 이광수-장백산인과 향산광랑의 사이'_김주현

2021년 admin 21-07-12 441

제목: [우리말과 한국문학] '춘원 이광수-장백산인과 향산광랑의 사이'_김주현

매체: 영남일보

일자: 2021-06-17

전문: 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210616010002032


한국 근대장편소설 개척자
춘원 이광수 작품에 드러난
독립운동과 친일의 두 얼굴
정치행적으로 인한 비판과
작품의 평가는 별개로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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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현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대학 시절 1학년 한 후배가 나한테 물었다. 고등학교 시절 이광수의 '무정'을 감명 깊게 읽었는데, "작가의 친일이 작품 평가에 영향을 미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녀는 대학에 들어와 이광수가 친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당시 친일 행위에 대해 무척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녀의 질문에는 이광수의 친일에 대한 안타까움과 자신이 위대한 작품으로 알고 있던 '무정'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몰라 하는 고뇌가 들어 있었다. 사실 우리는 근대문학을 공부하면서 이 질문과 대면하지 않을 수 없다.

이광수의 친일은 임종국에 의해 널리 알려졌다. 그가 당시 존경받던 작가였다는 측면에서 이광수의 친일에 대한 파장은 더욱 컸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훌륭한 작가란 훌륭한 인품까지 지녀야 한다는 생각을 은연중 갖고 있다. 그래서 일제 치하 수많은 문인의 친일 행위가 밝혀질 때 더러는 실망하고 더러는 가슴 아파하기도 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내가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어떠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이광수가 처음 쓴 필명은 외배(孤舟)다. 자신의 외로운 신세를 담은 것이다. 이후 춘원(春園)으로 고쳤는데 '무정'(1917)도 춘원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했다. 당시만 해도 그는 민족계몽에 앞장선 열정적인 문사(文士)였다. 그는 1919년 일명 '2·8선언서'로 알려진 도쿄유학생독립선언서를 기초했다. 그리고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한다. 독립신문 사장과 신한청년 주필을 하고, 사료편찬회 주임을 맡아 한일관계사료집을 편찬하는가 하면, 3·1운동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다. 이 시기 장백산인(長白山人·장백산은 '백두산'의 다른 이름)이라는 필명도 썼는데, 그는 단군의 자손, 대한의 아들로서 조국 독립 운동에 힘을 쏟은 것이다. 그런 그가 1921년 3월 임시정부를 등지고 귀국을 했다. 귀국 당시 그는 귀순증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이후 민족개조론을 통해 열등한 민족성의 개조를 외치는 등 반민족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광수는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방면된 이후 본격적으로 친일의 길을 걸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조선문인협회장이 되어 황민화 운동을 지지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그리고 일제가 창씨개명령을 공포(1940년 2월11일)하기 이전에 일제의 창씨개명 운동을 지지하고, 아울러 자신의 이름을 향산광랑(香山光郞)으로 바꾸었다. 일본의 초대 천황 신무(神武)가 즉위한 향구산(香久山)을 줄여 향산으로 자신의 성을 삼은 것이다. 곧 '일제의 신민'임을 대내외에 천명한 것이다. 그리고 일제의 징병제를 찬양하는 등 향산광랑의 이름으로 무수한 친일 글을 발표한다. 그러한 활동 때문에 광복 이후 반민특위에 기소되기도 했다.

장백산인과 향산광랑, 이는 이광수의 두 얼굴이기도 하다. 우리는 어느 한 면만으로 그를 이야기할 수는 없다. 이광수의 친일을 부인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된다. 또한 이광수가 상하이 시절 보여주었던 독립운동가로서의 행동도 무시하거나 논외로 해선 안된다.

'무정'의 작가 춘원 이광수. '무정'은 우리의 근대 장편소설을 연 작품으로 평가된다. 춘원이 우리 근대 소설의 개척자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그의 이후 행적을 합리화해줄 수는 없다. 아울러 향산광랑으로서의 글쓰기나 정치적 행위들이 이광수의 전체는 아니다. 평가할 것은 평가하고, 비판할 것은 제대로 비판하는 것이 문학 독자나 연구자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김주현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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