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우리말과 한국문학] 범 진리의 언어 '가나다라마바사'_칸 앞잘

2021년 admin 21-07-12 413

제목: [우리말과 한국문학] 범 진리의 언어 '가나다라마바사'_칸 앞잘

매체: 영남일보

일자: 2021-07-08

전문: 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210707010000780


서울의 한복판에서 발굴된
세계 최초의 한글금속활자
한글창제 정신 새롭게 주목
월인석보와 훈몽자회 통해
佛經을 읽기 위한 언어 입증
칸 앞잘 아흐메드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연구교수
서울 한복판에서 발굴된 항아리 속 한글 금속활자는 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에 한국은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을 제치고 가장 일찍 금속활자를 사용한 나라가 되었다. 항아리에는 금속활자와 함께 천문시계도 들어있었다. 그 항아리는 현대인에게 보물의 항아리다. 이 발견은 나에게도 기쁨과 감동을 가져다주었다. 춘원 이광수의 '단종애사'의 "지금부터 490년 전, 조선을 가장 잘 사랑하시고 한글과 음악과 시표(時表)를 지으시기로 유명하신 세종대왕…"이라는 첫 문장을 떠오르게 했다. 금속활자에 대해 유물자문에 참여한 경북대 백두현 교수는 "세조가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불경을 한글로 만든 글자와 같다"고 하였다.

한글을 향한 세조의 사랑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는 한글의 발전에 가장 많은 심혈을 기울인 왕이었다. 부처님의 일대기를 한글로 풀어썼으며, 세상을 떠난 친모인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월인석보를 한글로 친필해서 부처님에게 바쳤다. 월인석보는 훈민정음 언해-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 등을 합본한 책으로 언어학, 문학, 종교와 문화학 측면에서 큰 가치를 지닌다. 세조가 왜 한글로 써서 부처님에게 바쳤을까? 이에 한글이 어떠한 정신에 의해 탄생하게 된 것인가를 사색할 필요가 있다.

한글 이전에도 한국에서는 중국식 언어보다 새로운 방식을 시도했다. 이두, 향찰, 구결이 그 예다. 그러나 중국식과 구별된다 하더라도 한자 형태를 지니기 때문에 새로운 언어라고 하기가 어렵다. 고려시대에는 국교가 불교라 불릴 정도로 조선시대 승려보다 존엄하고 고상한 위치에 있었다. 이들은 조선시대 숭유억불 정책에 의해 탄압을 받고 위상도 떨어졌다. 일제강점기 문학가 장혁주는 '나의 풍토기'에서 이 시기에 대해 왕이 승려를 제어하기 위해 유교를 제창하였으며 유교의 통치로 인해 조선 여성들이 남성의 노예나 짐승으로 되어버렸다고 설명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억압받는 신앙인과 노예 취급을 받는 여성들은 왕의 통치 방식을 바꾸길 바랐을 것이다. 한글은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탄생했으니 창제한 사람이 불교에 대해 집착을 갖고 다시 활성화하려 했을 것은 분명하다.

유교의 문제를 극복하려는 불교 신앙인으로서 가령 경전을 정확한 발음으로 읽지 못하면 모독하는 행위가 된다. 불교는 인도에서 들어온 것이지만 한국에 도착했을 당시 이미 중국식 한자화가 되었다. 불경의 내용을 정확하게 발음해서 읽으려면 범어를 배워야 하는데, 2세기부터 힌두교의 부흥과 함께 불교가 인도에서 이단으로 간주 되기 시작했기에 범어는 힌두교 경전의 언어가 되어버렸다. 타 종교의 글자인 '데바나가리'를 그대로 배우다가 왕실로부터 더 심한 탄압을 당할 수도 있었다. 이렇게 정치와 언어의 문제를 극복하자는 취지에서 '(훈)가르침을 통해서 (민)백성에게 불경을 (정)올바르게 (음)발음하게 한다'는 훈민정음이 탄생했다.

한글 창제가 곧 '불교 경전 읽기'를 위한 언어였다는 사실을 입증해줄 수 있는 근거로 최세진의 훈몽자회(1527)와 불교의 진언문에서 보여주는 자음·모음의 배열순서이다. 그것은 '가나다라마바사'이다. 이 소리는 범어에서 '범汎(가나) 진리(다라마)의 언어(바사)', 즉 '범 진리의 언어'라는 뜻이다. 다만 2019년 영화 '나랏말싸미'에서 보이는 것처럼 그 사실이 가려진 채 반포되어야만 했다. 최세진의 판본이 비록 뒤늦게 나왔지만, 그것이 원본 복원을 위한 판본이었을지도 모른다.
 칸 앞잘 아흐메드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연구교수>


QUICK MEN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