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우리말과 한국문학] 최인훈의 선견지명, 누가 '광장'의 이명준인가_칸앞잘

2021년 admin 21-09-16 400

제목: [우리말과 한국문학] 최인훈의 선견지명, 누가 '광장'의 이명준인가_칸앞잘

매체: 영남일보

일자: 2021-00-02

전문: 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210901010000064

최인훈 소설 '광장' 속 이명준
중립국 인도로 가던 중 자살
현실 속 현동화·장기화씨 등
인도에 정착한 전쟁포로들
각기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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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앞잘 아흐메드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연구교수

최인훈의 '광장'은 전후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아왔다. 이는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한 4·19혁명이 성공했다는 배경에서 발표되었다. 혁명의 성공이 가져온 기쁨만큼 주인공인 이명준이 어딜 가도 행복하게 살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인도라는 중립국을 택하였다가 타고르호를 타고 가는 도중에 '크레파스보다 진하고 푸른 바다'에 자신의 몸을 던지고 자살하고 만다. 그러나 이명준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인도의 한인 사업가인 현동화씨의 상황과 같이 놓고 본다면 문학과 현실 사이의 거리감을 절감할 수밖에 없다.

소설 속 이명준은 남쪽 출신이지만 월북한 아버지로 인해 빨갱이로 지목받다가 아버지를 찾으러 월북하게 된 후 인민군으로 남북전쟁에 참전했다가 포로가 되어 남쪽도 북쪽도 아닌, 제3의 길인 인도를 선택했다.

이명준은 인도를 향한 바닷길에서 한인 동포에게 폭력을 당하고 인도의 도시인 캘커타에 도착한 후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 없이 생활할 것을 상상했다. 그러다가 전쟁에서 죽은 사랑하는 가족들을 생각하다가 자신의 몸을 바다에 던지게 된다. 이것은 당시의 그가 한국이라는 정체성에 대해 얼마나 실망했는지 또한 사랑을 얼마나 갈망했는지를 보여준다.

최인훈은 인도를 소재로 한 '가면고'라는 작품에서 비폭력과 맨얼굴의 사랑을 호소했다. 이어 '회색인'에서는 사랑에 대해 불교의 방식을 통해서 진지하게 다루었다. 그것은 기독교식의 사랑이 신(神)의 시점 위주로 하여 개개인의 다양한 특색을 간과함에서 나온 허(虛), 그 추상성에서 나온 것과 다르게 불교식의 사랑은 인간의 정(情)부터 출발하여 자기와 가장 가까운 타자에게 친밀감을 느끼게 한다는 인연의 사상과 연결되어 있어 고약한 이웃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인훈은 불교식의 사랑을 추구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이명준을 다른 중립국이 아닌 인도로 보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상상 속 인도는 서방정토이지만 현실에서는 비폭력을 주장한 간디가 해방 직후에 국가 통일을 위해 파키스탄으로 협상하러 가려 했을 때 한 명 힌두교의 신자에 의해 총살당해 사망한 곳이었다.

이후 인도가 국가 분열 문제로 인해 아수라장이 되어가는 상황이 언론 보도를 통해서 한국에 전해졌다. 간디식 국가의 통일이 없으면 참극만 일어날 것을 최인훈이 잘 이해했고 그렇기에 4·19혁명 이후에도 기뻐하지 못해 이명준을 죽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간디가 국가의 분열 상황 속에서 살해당하지 않았다면 이명준은 인도에 도착했을 것이다. 한국동포들과 같이 안 살려고 했던 이명준에 대비해서 본다면 누가 현실 속의 이명준이 될까? 선진국을 희망하지만 가지 못해 인도를 택할 수밖에 없어 뉴델리에서 사업하다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린 성공한 현동화일까?

남인도에서 한반도 사람들과 교류하지 않은 채 인도인처럼 생활했다가 생사불명이 된 지신영일까? 동포들과 함께 양계사업을 했다가 따로 독립하여 장사했으나 실패해서 한국인들과의 접촉을 기피한 채 뉴델리 인근의 빈민촌에서 막노동하면서 연명하게 된 장기화일까? 어쩌면 중립국답지 않는 중립국인 인도처럼 이명준답지 않는 이명준인 한인 동포만 존재했을지도 모른다.

칸 앞잘 아흐메드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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