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우리말과 한국문학] 한자어와 공공언어_김덕호

2021년 admin 21-09-16 367

제목: [우리말과 한국문학] 한자어와 공공언어_김덕호

매체: 영남일보

일자: 2021-09-16

전문: 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210915010001952


외래어·전문용어의 일상화
공공언어로 사용된 漢字語
우리말 어렵게 만든 문제점
국민의 언어소통 힘들게 해
쉬운 용어와 문장으로 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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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호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우리 민족의 말글살이 역사는 대단히 험난했다. 오랫동안 이어온 어려운 한자어 사용과 근대 시기 일본어 강요 및 광복 이후 많은 외래어가 범람하면서 건강한 말글살이가 위태로울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최근 사회가 발달하면서 학술과 산업 분야의 전문용어 중에는 전문가의 사용 범위를 벗어나 일상어로도 많이 사용되면서 쉬운 소통의 삶은 더욱 어려워지기도 했다. 심지어 쉬운 공공언어 사용에 앞서야 하는 공공기관에서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을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어서 국민의 말글살이를 더욱 곤란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어려운 한자어 사용이 큰 문제인 것 같다. 가각(街角)지점, 감호(監護), 개가제(開架制), 게첩(揭帖), 번문(飜文), 부의(附議), 부작위(不作爲), 필(畢)하다, 허무인(虛無人) 등 이런 말이 얼마나 이해되는지?

한국어에는 한자어가 매우 많으며, 그 기원도 다양하다. 우선 중국에서 비롯된 단어로 중심(中心), 천지(天地), 천성(天性), 타인(他人), 생명(生命), 풍속(風俗), 동물(動物), 식물(植物)은 오래전에 들어온 말이고, 십분(十分), 자유(自由), 용이(容易)는 현대 중국어 한자에서 비롯된 말이다. 중국에서 비롯된 한자어이지만 우리말로 귀화한 단어도 있다. 필(筆)에서 붓이, 묵(墨)에서 먹이, 상채(常菜)에서 상추가, 백채(白菜)에서 배추가 되었다. 그런데 한자어 중에는 일본에서 들어온 단어도 많다. 철학(哲學), 심리학(心理學), 미학(美學), 공학(工學), 우주(宇宙), 원소(元素), 입구(入口), 출구(出口), 할인(割引), 품절(品切), 엽서(葉書), 약속(約束), 직업(職業), 출산(出産), 고참(古參), 식비(食費), 간식(間食), 견학(見學), 고객(顧客) 등이다. 물론 한국에서 자생한 한자어도 많이 있다. 배달(配達), 사돈(査頓), 시댁(媤宅), 친정(親庭), 양반(兩班), 영감(令監), 총각(總角), 사주(四柱), 팔자(八字), 복덕방(福德房), 감기(感氣), 서방(書房), 도령(道令) 등이다.

이처럼 한국어의 70% 이상이 한자어일 정도로 비중이 높다. 그래서 국가에서는 1천800자의 한자를 가르칠 수 있도록 교육 범위와 내용을 정하고 있다. 그리고 2005·2010· 2015·2020년에 실시한 국민의 언어 의식 조사에서 국민의 60% 이상 1천800자 정도의 한자 교육이 적절하다고 대답하고 있다. 그래서 한자어를 잘 이해하는 것이 한국어 표현과 이해 능력을 높이는 지름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난해한 한자어는 한국어를 어렵게 만드는 대표적인 문제점이기도 하다. 가각(街角)지점은 모서리 지점을 뜻하며, 감호(監護)는 감독 보호, 개가제(開架制)는 자유롭게 책을 찾아볼 수 있는 제도를 말한다. 게첩(揭帖)은 붙임이라는 뜻이고, '번문(飜文)하다'는 글자로 '옮겨쓰다'란 뜻이다. 부의(附議)하다는 토의에 부치다란 말이고, 부작위(不作爲)는 소극적 대응 행위를 뜻한다. '필(畢)하다'는 '마치다'란 뜻이고, 허무인(虛無人)은 실제 존재하지 않은 사람을 뜻한다. 그런데 이런 한자어가 공공기관의 공공언어에서 많이 사용되기도 한다.

이러한 어려운 한자어가 생활 속에서 많이 사용된다면 국민의 말글살이는 얼마나 힘들까? 2005년 문체부에서 제정한 '국어기본법'의 제14조에는 공공기관은 공문서를 국민이 알기 쉬운 용어와 문장으로 써야 하며, 어문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국가는 쉬운 한자어 쓰기를 포함한 공공언어 정책의 확산과 국민이 한국어를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김덕호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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