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우리말과 한국문학] 다시 '크게 모일 날'을 기다리며_안미애

2021년 admin 21-10-06 480

제목: [우리말과 한국문학] 다시 '크게 모일 날'을 기다리며_안미애

매체: 영남일보

일자: 2021-09-30

전문: 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210929010003433

秋夕의 순수 우리말 한가위
크게 모인, 차오르는 날 의미
신라 풍속에서 유래된 명절
보름달 아래 가족 모두 모여
소원 빌 수 있는 날 오길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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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미애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와, 달 좀 봐. 저게 보름달이야. 저 달에게 소원을 빌어볼까?"

"왜?"

"한가위 달은 특별한 달이야."

"한가위가 뭐야? 가위야?"

"추석이 한가위야. 싹둑싹둑 가위가 아니야. 추석 책을 보면서 같이 알아보자."

지난 추석 밤, 보름달에 소원 빌기로 시작된 아이와의 대화에서 필자가 한, 가장 큰 실수는 '한가위'란 이름을 아이에게 말한 것이었다. 46개월짜리 아이에게 한가위와 보름달의 의미를 자세하게 설명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아이와 함께 추석 관련 이야기를 다룬 책을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가위'란 말이 나오지 않게 조심하며 말이다. 다행히 아이는 추석 그림책 속의 화려한 먹거리 그림과 자신이 먹은 송편을 연결하는 데 정신이 팔려서 한가위는 잊어버린 듯했다.

'한가위'의 '가위'가 왜 싹둑싹둑 '가위'가 아닌지, 몇 번씩 보는 보름달 중에서도 왜 한가위 보름달에만 소원을 비는지 궁금한 것은 아이 입장에서는 당연했다.

중추절(仲秋節), 중추가절(仲秋佳節), 추석(秋夕), 한가위, 팔월대보름, 가배(嘉俳)절… 이 단어들이 모두 추석을 가리키는 단어들이다. 이중 '중추'나 '추석'은 한자어라 뜻을 바로 새길 수 있지만, '한가위'는 그렇지 않다. 조선 후기에 홍석모가 지은 동국세시기에 음력 8월을 추석이나 가배라 불렀고, 신라 풍속에서 시작되었다는 설명이 있다. 이 기록을 단서로, 신라의 기록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중국의 수서, 구당서, 삼국사기에서 관련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먼저 수서 신라편과 구당서에는 신라에서 정월 초하루에는 모든 신하들이 모여 일월(日月)신에게 인사를 올렸고, 8월 보름에는 잔치와 활쏘기 대회를 열었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에서도 가을 7월 기망(幾望, 16일)에서 8월15일까지 왕녀 둘을 대표로 여성들이 편을 나누어 길쌈놀이와 온갖 놀이를 했는데 이를 '가배'라고 한다 하였다. 8월 보름(15일)의 잔치에 대한 기록으로 볼 때, '가배'와 '추석'은 같은 날임이 틀림없다. 조상들이 섬긴 '일월신' 또한 해와 달을 가리키니, 특히 크고 둥그렇게 떴을 한가위 보름달은 특별한 달로 대접받았을 것이다.

이런 기록을 근거로 국어학자들은 한가위의 어원을 추정한다. 한가위의 '한'은 '크다, 많다'의 뜻이고, 가위는 삼국사기에 기록된 '가배'에서 온 말이라는 것이다. '가배'를, 한자를 빌려 고유어를 표기한 차자 표기로 본다면, '가배'는 '갑-(여기서 'ㅏ'는 아래 아)'을 표기한 것이란 해석이 유력하다. 이 '갑(아래 아)다'는 고이다, 모이다, 차오르다의 뜻으로 해석되는 고유어이다. 그렇다면 '한가위'는 '크게 모이다' 정도의 해석이 가능하다.

먹거리가 풍성하고 날씨도 선선해져 모두가 모이기 좋은 날인 음력 8월15일에, '크게 모이는 날, 크게 차오르는 날'이란 뜻의 '한가위'는 더없이 잘 어울리는 이름이란 생각이 든다. 그날 뜬 달에게 우리 조상들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를 소원했을 것이다.

아쉽게도 올해 추석도 전염병으로 모두가 모이기 어려운 명절이 되어버렸다. '한가위'의 뜻처럼, 내년 한가위는 두둥실 뜬 보름달을 바라보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를 가족들이 모두 모여 외칠 수 있는 날이 되기를 바란다.


안미애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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