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우리말과 한국문학] 던전 앤 드래곤 : 깨어나세요, 용사여!_현영희

2021년 admin 21-10-18 455

제목: [우리말과 한국문학] 던전 앤 드래곤 : 깨어나세요, 용사여!_현영희

매체: 영남일보

일자: 2021-10-07

전문: 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211006010000649

OTT 플랫폼 춘추전국시대
우리의 모든 문화·기술·생활
애플리케이션으로 집결 중
온라인 韓문학 플랫폼 '던전'
문학 생태계 확장 계기 되길
2021100601000168700006491
현영희 경북대 강의초빙 교수

OTT 서비스인 디즈니 플러스가 11월 국내에 상륙한다고 한다. 웨이브, 티빙, 넷플릭스, 왓챠, 유튜브 프리미엄 등의 매출을 올려주며 OTT 대전쟁의 중립적 대국적 호구가 되느라 주머니가 비어가던 나에게 이것은 순수한 희소식이 되지는 않았다.

SBS가 처음 개국했을 때 그것은 심형래의 '칙칙'에서 신동엽의 '안녕하시렵니까'로, '사랑이 뭐길래'의 '대길'이에서 '모래시계'의 '태수'로 넘어가는 일대 혁신적인 사건이었고, 전 국민의 시청권이 얼떨결에 자동 업그레이드가 되는 진보적인 감동이었다. 하지만 OTT 플랫폼 춘추전국시대에 새로운 플랫폼 상륙에 대한 뉴스는 새로운 오리지널 시리즈에 대한 설렘뿐만 아니라 한 달 1만원에 상응하는 심적 갈등도 함께 표류한다.

실은 주말 내내 전 세계적인 돌풍이라는 '오징어 게임'을 몰아보기 위해 넷플릭스에 접속했는데, 문득 매달 2천500원씩 내는 수신료가 무색하리만치 텔레비전을 보기 위해 텔레비전을 켠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징어 게임'이 KBS2에서 제작됐을 리도 없겠지만 만약 그랬다 하더라도 방영 한 달 만에 그 출연진이 '지미 펠런 쇼'에 초청될 리도 없었을 것이다. 할머니가 자꾸 "그 유명하다던 오징어 게임이라는 드라마는 도대체 몇 번 채널에서 하는 거냐"라고 물어본다던 어느 인터넷 게시글은 지금의 아이들에겐 이해조차 못 할 농담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리모컨의 채널 대신 인터넷 주소가 더 익숙하게 되었다.

만화도 마찬가지다. '슬램덩크'의 강백호를 보기 위해 '주간 소년챔프'를 사러 꼬깃꼬깃한 종이돈을 쥐고 달려갔던 것이 언제였던가. 이제는 다들 네이버나 카카오로 접속해서 웹툰을 본다. 거의 모든 문화와 기술과 생활이 애플리케이션으로 개발된 플랫폼으로 들어갔다. 물론 문학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 신간을 사러 교보문고에 가는 것보다 YES24나 알라딘에 접속하는 일이 더 많아졌다. 그러나 문학 그 자체가 창작되고 전달되는 플랫폼은 생각보다 아주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 웹 소설은 현재 웹툰의 수준만큼 활성화가 되어 카카오 페이지, 네이버 시리즈, 문피아, 조아라 등의 플랫폼이 자리를 잡고 있으나 단편 소설이나 시 등 소위 순문학을 위한 플랫폼은 여전히 근대 이후 지속되었던 문예지나 출판사 혹은 신문사 등을 통한 방식이 아니면 자리를 잡기가 힘들다.

'2020년 2월 이러한 전통적인 관행과 출판사 중심 생태계를 혁신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만들어진 온라인 문학 플랫폼이 있다. 서호준 작가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이 플랫폼의 이름은 '던전'이다. 이 플랫폼은 기성 문단의 견고한 성벽을 허물고 있을까? 혹은 어느 정도의 새로운 파도를 만들어 냈을까? 그 모두 아니다. 이 플랫폼은 '2021년 12월을 마지막으로 서비스를 종료할 것을 얼마 전 예고하였다. 사실 이는 문학 생태계의 확장이라는 드래곤을 잡기 위해 펜을 든 용사들이 뛰어든 첫 던전은 아니었다. '2003년에는 '한 페이지 단편 소설'이라는 웹사이트를 통해 단편 소설의 독립 출판이 이루어지기도 했었으나 '2016년에 종료되었다. 용사들은 현재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포노 사피엔스에 의해 촉발된 플랫폼 경제 시대는 일부 특정 기업에 의한 독점적 지위라는 부작용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우려되는 것은 혁신이 없는 현재의 방식에서 독자라고 불리는 수요의 파이가 적어도 이대로 유지는 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아니 그보다 언젠가는 이상문학상이나 젊은 작가상을 새로이 수여할 작가가 없어지거나 대중에게서 관심이 멀어지는 날이 오지는 않을까. 나이키의 경쟁자가 닌텐도였던 것처럼 한국 문학의 경쟁자는 넷플릭스가 될 것이다.
현영희 <경북대 강의초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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