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우리말과 한국문학] 코로나를 대하는 언어적 자세_남길임

2021년 admin 22-01-03 357

제목: [우리말과 한국문학] 코로나를 대하는 언어적 자세_남길임

매체: 영남일보

일자: 2021-12-16

전문: 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211214010001560



최근 등장 코로나 신어·은유
생소한 대상 단순하게 설명
언어표현의 긍정적 힘 중요
코로나시대 격려의 말 통해
상호 연대감을 이끌어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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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길임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2007년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National Health Service) 암 정책 개혁위원회에서는 관련 공문서에서 '(암과) 싸우다, 투쟁하다' '(암과의) 전투, 전쟁' '전략' 등의 전쟁 은유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기로 한 바 있다. 이미 굳어진 은유인 '암은 인류 최대의 적'과 같은 표현이 환자나 의료진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암 환자와 의료종사자들의 실제 사용 언어를 분석한 몇몇 연구에서 밝혀진 바로, 이러한 전쟁 은유는 환자와 암을 상호 '적'으로 간주하고, 암으로 사망한 환자는 전쟁에서 처절하게 싸우다 패배한 병사라는 부정적인 암시로 이어진다. 한편 전쟁 은유를 대체할 만한 긍정적인 은유은 여행 은유다. '암 치료의 여정' '동반자, 가이드' 같은 여행 은유는 전쟁 은유를 대체할 만한 긍정적인 효과를 가진다. 이 은유에 따르면 암 이후의 '죽음'은 '동반자'와 함께하는 '여행의 끝'에서 맞이하는 평화로운 과정이 되며, 전쟁에서의 패배로 인한 죽음으로는 떠올릴 수 없는 삶의 마무리, 유종의 미와 같은 긍정적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최근 몇몇 연구들에 따르면 전쟁 은유와 여행 은유가 각각 부정적이고 긍정적이라는 이분법은 옳지 않다. 전쟁 은유는 오히려 '긍정적인 전투 정신'을 강조하거나 환자의 결연한 의지를 표현하고 의료진과의 상호 연대감을 강조하는 맥락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한다. 또 여행의 은유 역시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여행'이나 '빨리 마치고 싶은 고단한 여행'으로 비유될 때는 전혀 긍정적이지 않다. 이러한 일련의 연구들이 주목하는 것은 언어의 힘 또는 언어에 대한 섬세한 전략의 효과다. 일상화된 언어 표현들은 피할 수 없는 '암'의 투병 과정들을 환자, 의료진, 간병인들이 각기 긍정적으로 극복하는 데에 힘을 주기도 하고 빼앗기도 한다.

최근 코로나 이후 나타난 코로나 신어와 코로나 관련 담론도 암에 대한 은유 못지않은 이슈를 생산 중이다. 한국의 경우 코로나 발발 직후인 2020년 1월 '코로나 전쟁' '코로나 쇼크'라는 신어가 등장했고 이어 '코로나 정치' '코로나 특수' 등으로 이어졌다. 급기야 호모마스쿠스, 코로나사피엔스 등은 바야흐로 신인류의 시대라고 한 획을 긋는 표현들이다. 전쟁 은유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물론 가장 지배적인 방식이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해 3월 TV 연설에서 코로나 시기의 긴급한 조치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전쟁'이라는 단어를 7번이나 사용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역시 코로나 발발 초기부터 '전시 정부' '적을 무찌르고' '싸움에서 승리하는' 표현들을 써 왔다. 엊그제 보도된 국무총리의 백신과 방역 정책 관련 표현들도 그러하다. 이 글에서는 '코로나의 포위'라든지 '마스크와 방역 수칙'을 '갑옷'으로, '백신' 또는 '항체'를 '방패'로 표현함으로써 정부의 방역 및 백신 정책을 설득하고 있다. 은유는 복잡하고 낯선 것을 단순하고 익숙한 것으로 대체하는 설명력을 가진다.

코로나 시대의 언어, 무엇이 문제일까? 코로나는 여전히 전쟁으로 또는 병 밖으로 빠져나온 지니(악령), 위드 코로나의 여정으로도 표현되고 있다. 언어학적인 관점에서 특정한 은유나 프레임이 좋다거나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항상 옳지는 않다. 긍정과 부정의 판단은 시대나 공간, 매체에 따라 늘 가변적이다. 코로나를 대하는 언어적 자세에서 중요한 것은 어려운 시기에 서로 힘을 줄 수 있는 연대감, 동료애나 공감, 단결을 이끌어낼 수 있는 언어의 힘이다. 언어적 섬세함과 예민함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다.
남길임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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