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우리말과 한국문학] 난 널 유혹하는 거란다_현영희

2022년 admin 22-01-19 241

제목: [우리말과 한국문학] 난 널 유혹하는 거란다_현영희

매체: 영남일보

일자: 2022-01-06

전문: 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220104010000421


작가 등용의 관문 '신춘문예'
매일신보 '신년문예'가 시초
꾸준한 습작이 등단의 비결
작가지망생들, 글쓰기 통해
독자 유혹하고 위로 전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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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영희 (경북대 강의초빙 교수)

나에게 새해란 어떤 의미일까? 아주 어렸을 때는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한 살을 먹는 날이었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를 해도 세뱃돈을 주지 않는 날이었다. 조금 더 컸을 때는 다이어트 계획을 세우고, 커피 17잔을 마시고 받은 다이어리 캘린더에 생일을 스티커로 표시하는 날이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나 나에게 새해가 주는 가장 신성한 의미는 20여 명의 신인 소설 작가가 한꺼번에 등단하는 날이라는 것이다. 신문을 받으면 항상 제일 먼저 그 신문의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들을 찾아본다.(2022년 영남일보에서는 블랙 잭나이프의 임은영 작가님이 당선되셨다) 그 작품들은 음력설이 되기 전에 한 권의 신춘문예 당선 소설집으로 묶여 세상에 나온다. 나는 동경이나 질투 그리고 응원과 감사가 섞인 마음으로 소중하게 읽어 나간다. 한국에서 작가가 된다는 것과 소설가로 불릴 수 있다는 것은 조금 다른 의미다. 텀블벅을 통해 출판해 수만 부가 넘게 팔리거나, 독립출판을 거쳐 책을 여러 권 내고 있어도 등단을 하지 않으면 자격증이 발급되지 않은 유사 전문가쯤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임세랑 작가의 에세이 '미등단 작가의 어떤 고백'에 따르면 문예지는 기고 요청을 하지 않고 해외 레지던스 참가 기회나 창작기금도 받기 어렵다고 한다.

등단이라고 하는 것은 신춘문예나 문예지를 통한 공모전을 통해 수상한 경우를 말한다. 장강명 작가는 이에 대해 고려시대 광종이 중국에서 도입한 과거제도와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신춘문예의 경우에는 1915년 매일신보의 '신년문예'가 그 시초이며 세계에서 유례없이 영향력이 강한 작가 등용 과거시험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작가란, 혹은 소설가란 어느 심사위원 몇 명이 최종 합격 직인 따위를 찍어 주며 완성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박민규 작가는 등단하기 전에 약 30편의 단편 소설을 쓰고 신춘문예에 투고하였으나 모두 탈락했다. 아이러니하게 그가 '지구영웅전설'로 등단한 이후, 그가 썼던 단편 소설은 신동엽 창작상, 이효석 문학상, 이상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등단하기 전, 회사를 그만두고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그가 했던 것은 매일 일정한 시간 동안 글을 쓰는 것이라고 했다. 그것은 스티븐 킹이 실천한 것이기도 하다. 스티븐 킹은 13세 처음 자신의 소설을 '히치콕'이라는 잡지에 응모하여 거절 쪽지를 받았다. 그때부터 받았던 거절 쪽지들을 벽에 박은 못에 꽂아 두기 시작했고 14세가 되었을 때는 그 못이 쪽지들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더 큰 못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대형 트레일러의 세탁실에서 무릎 위에 어린이용 책상을 올려놓고 아내 태비의 휴대용 올리베티 타자기를 두드려 써낸 '캐리'가 베스트 셀러가 된 이후에도 하루 2천 단어를 꾸준히 썼다고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매일 아침 꾸준히 달리기와 글쓰기를 병행하는 하루를 보내는 것도 유명한 일화 중 하나다. 그렇기에 어제도 썼고 오늘도 쓰고 내일도 꾸준히 쓸 계획이라면 스스로를 작가 지망생이 아닌 작가라고 생각해도 충분하다.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에 "글쓰기의 목적은 돈을 벌거나 유명해지는 것이 아니다. 글쓰기의 목적은 살아남고 이겨 내고 일어서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것이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그러므로 나는 2022년 등단작가들에게 축하와 감사를 전하면서도, 동시에 당선이 되지 못한 수천 명의 작가 지망생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다. 여러분은 올해 등단은 하지 못했지만 언젠가 발행될 단편집에 실릴 작품이 하나 더 늘어났다고. 아이비의 '유혹의 소나타' 가사처럼 여러분을 치명적으로 유혹하고 있는 글쓰기가 살아남고 이겨 내고 일어서서, 언젠가 우리들을 유혹하고 위로하고 행복하게 해달라고.

현영희 (경북대 강의초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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