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우리말과 한국문학] 고통을 기쁨으로 바꾸는 기술_정우락

2022년 admin 22-05-25 298

제목: [우리말과 한국문학] 고통을 기쁨으로 바꾸는 기술_정우락

매체: 영남일보

일자: 2022-05-05

전문: 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220504010000557



신라시대 4구체 향가 '風謠'
백성들 부역하며 부른 노동요
진흙 나르는 공덕닦기 통해
인생의 고통 기쁨으로 치환
세상의 모든 어려움을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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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락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신라 선덕여왕 시절에 양지(良志)라는 승려가 있었다. 그의 선조가 누구인지 고향이 어디인지를 아무도 알지 못한다. 양지는 석장(錫杖, 승려들의 지팡이)을 부리는 신통한 능력이 있었다고 한다. 재를 지내는 등 절에 쓸 비용이 필요하면 그는 석장에 포대를 걸어서, 신도들의 집으로 날려 보냈다. 그러면 석장은 시주의 집으로 날아가 소리를 냈다. 이렇게 하여 포대에 시주가 가득 차면 석장은 다시 돌아왔다. 지금 경주 석장동의 석장사(錫杖寺) 이야기다.

양지는 또 손재주가 있어 어떤 물건이라도 잘 만들었다. 영묘사의 장륙삼존상과 천왕상은 물론이고, 사천왕사 탑 아래 있는 팔부신장, 법림사의 주불과 좌우의 금강신장 등은 모두 그가 만든 것이라 한다. 지금의 경주시 사정동에 있었던 영묘사 장륙삼존상을 만들 때는, 그 스스로 선정에 들어 부처를 친견한 후 그 모습 그대로 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성안의 남녀들은 거기에 감동되어 다투어 진흙을 나르며 양지를 도왔다.

당시 사람들이 부역을 하며 불렀다는 향가가 바로 풍요(風謠)이다. "온다 온다 온다, 온다 서러운 이 많구나. 서러운 중생의 무리여, 공덕 닦으러 온다"라 한 것이 그것이다. 이 노래의 가사를 찬찬히 살펴보면, '서러운 이 많구나' '서러운 중생의 무리여'라고 하고 있으니, 부역하는 사람들 모두가 괴로움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괴로움만 강조한 것은 아니다. 공덕을 닦으러 온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보자.

풍요를 불렀던 민중들은 무엇이 괴로웠을까? 작게는 진흙을 나를 때 발생하는 육체적 고통이고, 크게는 생사에 떨어진 그들의 삶 자체이다. 그들이 온 장소가 노동의 현장일 수도 있지만, 이 세상 즉 고해(苦海)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짧은 노랫말에 '온다'를 다섯 번이나 연거푸 말했으니, 이들은 지금 괴로움을 절감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스스로가 모두 서러운 존재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이에 대한 고민 역시 깊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괴로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신라사람들은 인간세상의 고통을 자각하며 공덕을 닦아 이것을 극복하자고 했다. '공덕 닦으러 온다'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양지가 영묘사에서 장륙삼존상을 조성하는데, 진흙을 나르며 돕고 있으니 그들에게는 이것이 바로 공덕 닦는 일이었다. 이로써 고해에 떨어진 서러운 삶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즉 신라사람들에게 있어 공덕 닦기는 괴로움을 즐거움으로 바꾸는 대표적인 기술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고해 속에 허덕인다. 나서 괴롭고, 늙어서 괴롭고, 병들어 괴롭고, 죽어서 괴롭다. 보고 싶은 사람을 보지 못해 괴롭고, 보기 싫은 사람은 봐서 더욱 괴롭다. 생멸의 시공간 속에 이미 들어온 우리 인간들, 이러한 괴로움의 실상을 제대로 자각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석가모니도 카필라성의 동·남·서·북 4문 밖으로 나가 인생의 괴로움을 철저하게 자각하였기 때문에, 출가해서 성도(成道)할 수 있지 않았던가.

곧 부처님 오신 날이다. 이 세상에 온 자들은 모두가 필연적으로 늙고 병들고 죽는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벗어날 수 없는 노쇠와 죽음의 수렁! 신라인들은 공덕을 닦으며 이를 벗어나고자 했다. 극락과 지옥은 우리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다. 고해를 자각하며 공덕을 닦는 자리, 그곳이 바로 극락이다. 공덕의 종류와 그것을 닦는 방법이야 저마다 다르겠지만, 저 신라사람들은 고통에 따른 기쁨의 전환술을 이미 알고 있었다.

정우락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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