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우리말과 한국문학] 천국의 소송비용_현영희

2022년 admin 22-11-24 178

국립국어원의 '말뭉치' 사업
저작물 무단 사용으로 중단
전자책 대출 서비스와 관련
경기도사이버도서관 소송
공공대출보상권 논의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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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영희 경북대 강의초빙 교수


보르헤스는 "천국이 있다면 필시 도서관처럼 생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막상 그의 단편 '바벨의 도서관'에 나온 도서관의 모습은 젖과 꿀이 흐르는 낙원은 아니었다. 육각형 진열실이 아래위로 무한히 연결되어 있는 이 도서관의 책장에는 문자로 쓰일 수 있는 모든 것들이 꽂혀 있었다. 사람들은 도서관에서 태어나 평생을 단 한 권의 책을 찾아 도서관을 헤매다가 서로를 공격하고, 생의 마지막에는 끝이 없는 허공 속으로 던져졌다. 도서관의 사람들이 색인 기능이 있는 단말기를 하나씩 가지고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그래서 보르헤스의 말에 감히 첨언을 하자면, 천국이 있다면 그곳은 필시 검색 엔진이 있는 하이퍼 스케일급의 데이터 센터에 의해 관리되는 곳일 것이고 선량한 영혼들은 전자책 리더기를 들고 그곳을 어디에서나 접속할 것이다. (그리고 그곳은 절대 화재나 정전이 없을 것이고 안정적으로 이중화되어 관리되고 있을 것이다.)

그 천국은 1989년 개발된 월드 와이드 웹의 반석 위에서 구글, 아마존 등으로 촉발된 인터넷 혁명과 비즈플렉스와 같은 물질로 만들어진 고화질 스크린, 매사추세츠주에 위치한 이잉크(E Ink)가 개발한 하전 입자 필름 등의 발전으로 건실한 실체가 드러났다.

2021년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민 문학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43%가 문학 독서 경험이 있었고 매체별로는 종이책이 40.9%, 전자책 10.9%, 오디오북 5.2% 순이었으며 전자책의 경우 10대, 20대가 60대 이상에 비해 10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예측 가능하듯이 전자책의 비중은 점점 높아질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이 그저 순탄치만은 않다.

최근에는 웅진그룹 출판물류회사 웅진북센이 국립국어원의 '문어 말뭉치 사업' 구축 사업에 참여하면서 국내 최대 규모의 전자책 저작권 침해에 관련한 소송에 휘말려 진행 중에 있다. 1천226개 출판사의 2만53종 저작물 원문 수집 중에 1만5천993종의 저작물을 무단 사용한 것이 원인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8월24일부터 국립국어원의 '모두의 말뭉치-문어 말뭉치' 서비스가 일시 중단됐으며, 10월19일 문체부 국정감사에서는 국립국어원 원장과 <주>웅진의 대표이사가 증인으로 출석하기도 했다.

2021년에는 메디치미디어, 다산북스, 마이디팟 등 8개의 출판사들이 경기도사이버도서관(경기도청 및 경기문화재단)을 상대로 저작권 침해금지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위한 소장을 법원에 제출했고 현재까지 진행 중에 있다. 경기도사이버도서관은 6만8천종 이상의 전자책을 보유하고 실명 인증을 완료한 회원에 대하여 한 번에 최대 32권의 전자책을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출판사들은 이러한 도서관의 전자책 서비스가 저작권법 31조 위반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도서관의 전자책은 아무리 대출이 많이 발생해도 최초의 구매비용 외에는 저작권료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 출판사들의 입장이다. 하지만 종이책의 경우에도 그것은 마찬가지라는 논리적인 모순이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실질적으로는 '공공대출보상권'을 두고 한국도서관협회와 출판협회 사이에 발생한 갈등이 표면으로 드러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공공대출보상권은 공공도서관에서 대출이 시행될 때 저작권자 등이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권리이다. 1946년 덴마크가 세계 최초로 입법하여 2018년 기준 35개국이 이를 시행하고 있지만 국제적으로 확립된 권리는 아니다.

그러므로 외람되지만, 보르헤스의 말에 두 번째 첨언을 하고 싶다. 천국이 있다면 그곳은 필시 검색엔진이 있는 하이퍼 스케일급의 데이터 센터가 이중화되어 관리되는 곳일 것이고 모든 저작권과 이해관계가 정리된 도서관일 것이다.


현영희 경북대 강의초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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