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우리말과 한국문학] 자장법사의 비극적 최후_정우락

2022년 admin 22-11-24 193

교단의 기강과 계율 정비한
신라시대의 고승 자장법사
미혹된 관념 '我相'에 갇혀
비극적인 최후 맞이하게 돼
아상을 깨고 眞相을 직시해야 


2022110101000070400001721
정우락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자장(慈藏)법사는 진평왕 대부터 무열왕 대에 이르기까지 활약한 신라의 고승이다. 매를 놓아 잡은 꿩이 눈물을 흘리자 이에 감동하여 출가를 청하고 법호를 자장이라 하였다고 한다. 자장의 출가 이전의 이력은 뚜렷하지 않으나 이미 혼인을 경험하였으며, 자식까지 둔 상태였다. 출가 후 638년(선덕왕 5)에 승실(僧實) 등 10여 명과 함께 당나라에 유학하였는데, 종남산 운제사로 가서 3년간 수도하였다.

그의 업적은 눈부시다. 특히 교단의 기강을 바로잡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일연은 삼국유사에서 자장을 '정률(定律)'로 규정하였던 것이다. 황룡사 9층 탑 건립을 건의하여 645년에 완공하고 통도사(通度寺)를 창건하는 등 전국 각처에 10여 개의 사탑을 세웠다. 특히 통도사에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쌓아 계율을 통한 국민교화에 힘써 계를 누구나 지닐 수 있게 생활화하는데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복식이나 연호를 중국의 것으로 따르도록 한 것도 자장의 건의에 의해서다.

만년에 강릉의 오대산으로 가서 수다사(水多寺)를 짓고 수도하였으며, 태백산 석남원(石南院)에서 입적하였다. 이후 신라 10성 가운데 한 사람으로 추대되어 흥륜사(興輪寺) 금당에 모셔졌다. 수다사에서 머물러 살 때 꿈에 기이한 스님이 나타났는데, 중국의 북대에서 본 문수보살의 모습과 같았다. 그는 자장에게 "내일 대송정(大松汀)에서 너를 볼 것이다"라 하고 사라졌다. 대송정이 지금의 어디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어쨌든 자장이 대송정에 가보니, 문수보살이 다시 태백산 갈반지(葛蟠地)에서 만나자고 했다. 자장은 갈반지를 알 수가 없어, 태백산으로 가서 큰 구렁이가 나무 아래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을 보고 그곳을 갈반지로 여겨 석남원(石南院)이라는 사찰을 짓고 수도하면서 문수보살을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늙은 거사가 남루한 승복을 입고 죽은 강아지를 담은 칡 삼태기를 메고 와서 시종에게, "자장을 보러 왔다"라고 하였다. 이에 시종이 자장에게 전하자 자장은 "아마 미친 자인 듯하다"라며 내쫓고 말았다.

거사는 쫓겨나며 말했다. "돌아 가리라. 돌아 가리라! 아상(我相)을 가진 자가 어찌 나를 볼 수 있겠는가?" 이렇게 말하고 거사가 삼태기를 뒤집어 털어내니 개가 사자보좌(師子寶座)로 변하였다. 거사는 거기에 올라타 빛을 발하며 떠났다. 자장이 이를 듣고 비로소 예의를 갖추고 빛을 따라 달려서 남쪽 고개로 올라갔으나, 그 거사는 이미 아득히 사라지고 말았다. 이에 자장은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고 말았다. 거사가 바로 문수보살이었던 것이다.

아상(我相)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나'라는 실체가 존재한다고 믿는 그릇된 생각이다. 불교에서는 '내가 있다'고 생각하는 '아상'은 근원적인 무지에서 오는 미혹된 관념이라 본다. 아상이 있다는 것은 나의 실체가 있으며 그와 동시에 나에게 속한 신분과 계급도 함께 존재하며, 따라서 나의 신분과 계급으로 상대방을 판단하게 되니 만물을 차별적으로 보게 된다. 결국 자장은 아상 때문에 문수보살을 몰라본 것이다.

자장은 남루한 승복을 입고 칡으로 엮은 삼태기에 죽은 강아지를 담고 찾아온 문수보살을 '미친 자'라며 내쫓았다. 계율을 정비하며 신라 최고의 지성임을 자랑하던 자장, 그는 결국 스스로의 세계에 갇힌 아상 때문에 비극적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다. 어쩌면 우리는 아상을 신봉하는 수많은 자장인지도 모른다. 아상을 깨고 진상(眞相)을 보자. 이때 비로소 남루한 승복 속에 묻혀 있는 문수보살을 볼 수 있다. 그분은 언제나 이렇게 초라하게 나타나 훌쩍 떠나버릴지도 모른다.


정우락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QUICK MEN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