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우리말과 한국문학] 손으로 책 읽기_안주현

2022년 admin 22-11-24 225

인류의 정보와 사상을 담는
유용한 정보 습득도구 '문자'
문자 자료의 디지털화 시대
손으로 책읽는 총체적 독서로
글의 전체적 맥락 이해해야 


2022110801000285700011201
안주현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연구교수


문자는 인간이 가진, 가장 유용한 정보 습득 도구 중 하나이다. 최근에야 음성 기록물, 영상 자료 등으로 정보를 습득하는 일이 많아졌지만, 문자가 발명된 후 20세기가 시작될 때까지 수천 년간 문자는 정보와 사상, 권력을 담는 가장 강력한 그릇이었다.

지난 7~8월에는 경북대 도서관에서 '귀중본 전시회'를 진행했고, 10월에는 영남대 도서관에서 '한글 관련 고문헌 전시회'를 개최했다. 지역 대학 도서관에서 개최하는 이런 전시회를 통해서 '음식디미방'(17세기에 저술된 조선시대의 대표 한글 음식 조리서), '구급간이방'(15세기에 편찬한 한글 의학서), '월인석보'('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을 합한 책)와 같이 귀중한 자료를 직접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저 전시회를 관람한 사람, 아니 저 전시회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사실 고문헌 전시회는 대중의 흥미를 끌기 어렵다. 요즘같이 국보·보물급 자료를 고해상도 이미지 파일로 어디에서나 펼쳐서 볼 수 있고 '조선왕조실록' 전체에서 특정 인물이나 단어가 몇 번 나오는지 클릭 한 번으로 알 수 있는 시대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고문헌 전시회를 찾아다니는 이유는 손으로 책을 읽는 것(실제로 존재하는 책을 보는 것)과 눈만으로 책을 읽는 것(이미지 자료, 입력 자료 등 디지털화된 책을 보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너무나 당연하게도 상대방과의 관계, 대화 장소, 시간, 다른 청중의 유무 등 대화의 맥락을 고려한다. 혹 다른 사람으로부터 이야기를 전해들을 때도 그 사람이 어떤 맥락에서 그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인지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최근 디지털화된 활자에 익숙해져 잊고 있지만, 글을 읽을 때도 문자가 전달하는 내용과 함께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종이 신문에서는 특정 기사가 어느 면 어느 위치에 실리느냐가 기사를 독자에게 전달할 때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또 편집자가 강조하고 싶은 주제는 여러 개의 비슷한 기사를 함께 배치함으로써 독자의 이해를 높이기도 한다.

이는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 간행된 문헌이나 편지와 같은 필사본 자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편지의 경우 '문안'을 '문(줄 바꿈) 안(한 칸 올림)'으로 쓰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편지를 받는 사람을 높이기 위한 '글 경어법'이다. 또 편지를 써 내려가면서 어떤 글자는 크고 진하게(주로 중요한 내용이나 상대방과 관련된 것), 어떤 글자는 작고 연하게(주로 덜 중요하거나 자신과 관련된 것) 쓰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것들은 입력된 자료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것들이다. 때로는 빽빽하게 글자를 채운 것도 모자라서 편지의 네 귀퉁이를 돌려가며 빼곡하게 써 놓은 편지를 보며 편지를 쓴 사람이 얼마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는지 이해하기도 한다.

문자 자료의 디지털화를 통해 평생 한 번 볼까 말까 한 귀중본을 앉은 자리에서 클릭 한 번으로 볼 수 있는 시대가 됐다. 한자를, 초서체를 읽지 못해도 입력 및 번역된 자료를 통해 그 내용을 깊이 있게 파악할 수도 있다. 그러나 종이 신문이 사라지고 네이버·다음 같은 포털이 새로운 '신문 지면'이 되어가는 지금, 낚시성 제목을 다는 일이나 기사는 읽지 않고 댓글로만 내용을 파악하는 현상은 종이 신문이 가졌던 맥락 없이, 기사 하나하나를 '파편적'으로 소비하기 때문에 생긴 문제일지도 모른다. 손으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책이 가진 맥락을 '총체적' '유기적'으로 읽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안주현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연구교수 

QUICK MEN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