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우리말과 한국문학] 우부가, 우리 사회의 자화상_조유영

2022년 admin 22-12-09 345

물질적 가치 우선되는 시대
경종 울리는 조선시대 가사
'우부가' 속 세남자 이야기
물질보다 사람, 신성한 노동
대접받는 사회로 나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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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영 제주대 국어교육과 교수

최근 우리 주변에는 '벼락거지' '영끌' '빚투' 등 부동산이나 주식 등과 관련된 새로운 말이 넘쳐난다. 이 말들은 부동산이나 주식이 급등하는 상황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을 표현한 신조어이다. 이처럼 한국 사회는 자본 중심의 경제적 불균형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고, 이러한 사회 변화는 결국 사람의 탐욕과 욕망을 자극하여 돈이라면 인간성조차 포기해 버리는 이들을 양산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조선 후기 가사 '우부가(愚夫歌)'는 나름 경종을 울리는 작품이다.

'우부가'는 우부(愚夫) 즉, 어리석은 세 남자에 대한 노래이다. 이 작품은 '백발가' '치산가(治産歌)' '용부가(庸婦歌)' 등과 함께 필사본 가사집 '초당문답가(草堂問答歌)'에 수록되어 전해진다. 근세에 들어와서도 '편편긔담경세가'(1908) 등의 신활자본으로 출간되었을 정도로 사람들에게 인기 있던 작품이다. 또한 가사집에 수록된 작품 대부분이 경세훈민(警世訓民)의 윤리적 교훈을 앞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을 편찬한 저자의 의도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우부가'에 등장하는 세 인물은 '말똥이' '곰생원' '껑생원'으로, 도덕적으로 타락한 인물이다. 먼저 남촌 양반 출신인 말똥이는 비록 금수저이기는 하지만, 능력에 비해 허영과 허욕만 가득 차 있는 인물이다. 특히 술과 기생, 놀음과 투전에 빠져 살며 가문과 조상을 저버리고 권세를 이용하여 남의 재물을 빼앗는 등 갖은 패악을 부리는 인물이다. 그러나 이러한 말똥이의 말로는 모든 재물을 잃고 문전걸식하는 신세로의 전락이다. 곰생원은 부모 덕분에 돈은 좀 있지만, 남에게 인색하고 돈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인물이다. 이러한 까닭에 그는 더 큰 돈을 벌기 위해 타인에게 사기를 치고 문서를 위조하며, 자신의 딸을 단돈 백 냥에 시집보내는 패륜을 일삼는다. 그러다 결국 사람들의 인심을 잃고 집을 나간 이후에는 소식조차 알 수 없게 된다. 마지막으로 껑생원은 우부 중에서도 흙수저에 속하는 인물로, 가진 것이 없기에 거칠 것도 없어 온갖 비윤리적인 행동을 다 하는 무뢰한이다. 특히 누이동생과 조카딸을 색줏집에 팔아넘길 정도로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후안무치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껑생원 또한 곰생원과 같이 집을 나간 후 그 소식을 알 수 없게 된다.

이처럼 '우부가'는 조선 후기 도덕적으로 타락한 인물들을 통해 당대 사회의 비윤리성과 그 폐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었다. 또한 근대 자본주의가 싹트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전통적인 가치와 윤리가 그 자리를 잃어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풍자적인 인물 형상을 통해 구체화하고 있음을 또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작품 속 모습들이 단지 그 시대만으로 국한되지는 않는다. 우리 사회 곳곳에도 또 다른 말똥이와 곰생원, 껑생원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돈을 위해 자신의 양심을 팔고, 권력에 기생하며 법의 테두리를 교묘히 피해 다니는 수많은 우부가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우부들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것은 결국 도덕적 가치보다는 물질적 가치가 우선되고, 나의 성공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밟고 올라서야만 하는 지나친 사회적 경쟁이 만들어낸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라 할 수 없다. 우리는 지금 이 시대의 도덕과 윤리를 다시 고민해야 한다. 돈이 아닌 사람을 그리고 불로소득보다는 신성한 노동이 대접받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조유영 제주대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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