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3단계)

[우리말과 한국문학] 한글 창제는 세종이 실천한 융합의 본보기

2019년 bae 19-09-27 723

제목: [우리말과 한국문학] 한글 창제는 세종이 실천한 융합의 본보기

매체: 영남일보

일자: 2019-09-19

전문: 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20190919.010300819260001


피라미드·타지마할·경복궁…

기술과 예술의 총체적 결합

인문학·과학 성공적 융합은

훈민정음이 대표적인 사례

성분 다양해 기원설도 많아


요즘 ‘융합’이 대세이다. 최근 대학의 전공학과 개편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낱말이 ‘융합’이다. 경북대학교는 13개의 융합 전공을 이미 개설하여 운영 중이고, 금년 3월에는 이 전공들의 운영을 통합 지원하는 ‘융합교육지원센터’가 설립되었다. 카이스트는 2020년 3월부터 학문의 경계를 허문 융합기초학부를 설치할 계획을 발표했고, 전국 여러 대학에서 융합 관련 전공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융합은 서로 이질적인 것을 교합하여 새로운 그 무엇을 만드는 것이다. 예컨대 구리 78%와 주석 22%를 ‘녹여서 합치면(融合)’ 놋쇠가 된다. 인간이 창조한 특정 결과물에는 인류가 쌓아온 기술, 지식, 경험, 예술 등이 융합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인도의 타지마할, 조선의 경복궁과 같은 건축물은 당대의 이용 가능한 지식과 기술 그리고 예술이 총체적으로 융합된 산물이다.

세종의 훈민정음(이하 ‘한글’) 창제는 인문학과 과학의 융합을 가장 성공적으로 실천한 사례이다. 한글에는 성리학에 기반한 삼재론, 음양론 등의 역학 이론이 융합되어 있다. 중국에서 도입한 성운학(당시의 음성과학)과 문자학, 고대 삼국시대 이래 전승되어온 우리말 표기의 경험(이두와 향찰)이 한글을 만든 원리로 작용했다. 외래 학문과 전래된 경험 등 다양한 요소를 융합하여 전혀 새로운 문자, 한글을 만든 것이다. 한글 창제자인 세종은 성리학적 세계관을 함의한 철학적 원리, 중국에서 유입된 성운학과 문자학의 방법론, 한자를 이용한 우리말 표기 경험을 토대로 하고, 15세기의 우리말을 분석한 연구 결과를 절묘하게 융합하여 한글을 창조해 냈다. 한글은 외래 학문의 여러 이론과 전통적 차자법의 개념 등을 독창적으로 변용하고 녹여내어 만든 융합체인 것이다. 한글은 15세기에 아시아의 문화와 학문이 우리나라에서 결정(結晶)된 정화(精華)라고 한 이기문 선생의 표현은 정곡을 짚은 요약이다.

지금까지 한글의 기원에 대한 갖가지 설이 나온 까닭은 한글에 융합된 성분의 다양함에 기인한다. 다양한 융합 성분 중 어느 일면을 강조한 결과, 갖가지 기원설이 분분하게 나왔던 것이다. 융합성의 관점으로 보면, 기존의 한글 기원설은 한글에 융합된 하나의 성분요소로 흡수된다. 특정 성분요소 하나를 강조하여 한글의 기원을 말하는 것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한글은 한자를 닮은 점도 있다. 글자 모양이 사각형이라는 점, ‘봄’처럼 ‘초성 ㅂ+중성 ㅗ+종성 ㅁ’을 서로 합쳐서 한 음절자를 만든 원리는 한자 구성에서 편(偏)과 방(旁) 그리고 부수를 합쳐서 낱자(江, 錦 등)를 만든 방법과 비슷하다. 한자가 사물의 형상을 상형했듯이(山 川), 한글은 발음기관의 모양과 움직임을 상형하여 ㄱㄴㅇ 등의 글자꼴을 만들었다. 같은 ‘상형’이지만 한글의 상형은 방법과 내용에서 한자의 상형과 다르다.

세종은 혀의 움츠림(설축)과 입술의 둥글어짐(구축)을 자세히 관찰하고 소리의 음가를 분석하여 모음의 대립관계를 세웠다. 이것은 세종의 독창적 방법론이다. 고대 인도의 파니니 언어학이 불교와 함께 중국에 전수되어 중국 성운학과 반절법을 발전시켰다. 중국 성운학이 한반도에 유입되어 한글의 자음 글자를 만드는 이론적 틀로 작용했다. 중국 성리학에 흡수된 주역 이론이 한글의 제자 원리로 융합되어 있다. 모음의 기본자(· ㅡ ㅣ) 세 개의 형상은 각각 天地人의 모양을 본뜬 것이고, ‘초성+중성+종성’을 합쳐 쓰도록 정한 것도 사람이 하늘과 땅을 이어준다는 삼재론에 바탕을 두었다. · ㅡ ㅣ를 서로 결합하여 ㅏ ㅗ ㅓ ㅜ를 만들 때는 음양 원리를 적용했다. 파스파 문자의 경우, 그 자형이 아니라 음소문자의 제자(制字) 원리를 참고했을 가능성이 있다. 세종은 당시까지 알려진 여러 학문을 두루 섭렵하였고, 문자 창제에 필요한 성리학·문자학·성운학·독창적 방법론을 융합하여 한글을 창제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융합을 실천한 본보기가 아니고 무엇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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