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3단계)

[우리말과 한국문학] 격동기의 사전, 한국어 사전의 미래

2019년 bae 19-10-04 730

제목: [우리말과 한국문학] 격동기의 사전, 한국어 사전의 미래

매체: 영남일보

일자: 2019년 10월 3일

전문: 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20191003.010260752300001


웹·모바일로 인쇄사전 몰락

격동기 사전의 위기론 대두

신조어 등장·소멸 엄청 빨라

패러다임 변화하는 현 시점

새로운 형태의 사전이 필요


올 1월에 개봉된 영화 ‘말모이’는 일제의 탄압 속에서 우리말과 한글을 지키고자 목숨까지 걸었던 연구자와 한글 운동가들의 노력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격동기의 사전을 연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건은 일제 치하에 우리말 사전을 편찬함으로써 민족의 혼을 지키고자 했던 이른바 ‘조선어학회 사건’일 것이다. 그런데 시야를 좀 넓혀 전 지구적인 관점에서 사전을 바라볼 때, 인쇄사전의 몰락과 인공지능의 발달이 교차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사전의 격동기란 말에 가장 어울리는 시점이 아닌가 한다.

유수의 세계적 사전 출판사들이 문을 닫았으며,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사전 출판사는 인쇄사전이 아닌 온라인 또는 모바일 매체를 위한 사전으로의 변화를 통해 다른 판로를 힘겹게 모색 중에 있다. 거기에 더하여 사전보다는 온라인 자동번역기를 선호하는 대중들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더욱 강력해진 포털은 기존 사전의 콘텐츠를 모아 ‘사전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정교한 언어사전 편찬에 대한 논의는 자취를 감춘 지 이미 오래다.

‘사전 위기론’이라 할 만한 이러한 현상은 이미 오래 전에 예고된 바 있다. 2012년 유럽사전학회는 “2020년에도 사전을 만드는 사람이 존재할까”라는 좌담 주제를 다루었고, 학자들은 여러 논문에서 ‘사전의 위기’ 또는 ‘사전은 죽었다’와 같은 강렬한 표현으로 우려를 표하였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사전학계는 인쇄사전의 몰락과 웹 사전의 확산을 예의주시하며 새로운 사전의 진로를 모색 중에 있다. 사전 또는 사전학처럼 세월의 부침이 많은 연구 분야가 있을까 싶을 정도다.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최신의 언어 정보와 정교한 기술을 담은 언어 사전은 여러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사전의 수준이 그 나라의 문화 수준을 반영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전이 가지는 문화적 가치도 중요하지만, 자동응답시스템이나 감성분석 등 자연언어처리나, 언어를 배우는 외국인 학습자를 고려할 때, 사전의 실용적인 부가가치는 엄청나다. 최근 들어, 세계 사전학계는 인간과 기계의 완전한 의사소통을 추구하는 인공지능의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사전 모델을 매우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웹과 모바일의 발달로 언어와 관련한 정보는 넘쳐나고 신조어의 등장과 소멸의 속도는 유례없이 빨라졌으며, 의미의 변화도 사전이 따라잡지 못할 만큼 빈번하고 빠르다. 사용자들의 사전 집필에의 참여는 ‘사용자 혁명’이라 부를 만큼 사전 편찬의 지평을 상당 부분 바꾸는 사건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사전학자의 언어 사실에 대한 정확한 판단과 언어정책적 관점도 중요해질 것이다.

다시 한국어사전으로 넘어와 보자. 한국어사전 역시 전지구적 사전의 격동기에서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다. 국립국어원에서 편찬한 ‘표준국어대사전’이나 대학에서 공을 들여 편찬한 사전들은 주요 포털에서 서비스되는 대표적인 사전이 되었고, 더 이상 인쇄사전으로 팔리지 않는다. 인쇄사전의 상업적 모델이 통하지 않는 현실에서 사전에 대한 민간의 관심과 투자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또 ‘우리말샘’과 같이 사용자의 참여로 이루어지는 온라인 사전이 속속 등장하고 있으나, 이들의 정보를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는지, 어떤 지침을 통해 운영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러한 격동기의 시점에서 눈여겨 살펴볼 만한 지점은 지금까지 한국 사전의 발달을 이루는 데 원천이 되었던 한국어 사전에 대한 관심과 투자는 거의 없다는 점이다.

곧 한글날이다. 적어도 한글과 우리말에 대한 정보 처리 기술에 대해서는 한국인인 우리가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세계 사전학의 관심은 기존의 단어 중심 사전을 넘어서, 맥락이나 언어의 관습성을 더 많이 반영한 의미 단위 중심의 사전으로 가고 있으며, 한국어 역시 한국인의 의사소통 양상을 온전히 담은 이상적인 사전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현 시점이 이른바 사전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는 격동기인 동시에 한국어의 유형론적 특성을 반영한 ‘새로운 형태의 사전’이 필요한 시점임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남길임 경북대 국어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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