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3단계)

[우리말과 한국문학] 옛시조로 본 늙음에 대한 斷想(단상)

2019년 bae 19-12-26 770

제목: [우리말과 한국문학] 옛시조로 본 늙음에 대한 단상

매체: 영남일보

일자: 2019-12-26

전문: 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20191226.010300818290001


인간의 진솔한 감정을 담고

보편적 상황 절묘하게 묘사

옛사람도 늙음을 크게 고민

100세시대의 초고령화사회

충분히 대비하는지 돌아봐야


최근 우리 사회에서 늙는다는 것은 마냥 부정적인 것으로만 여겨지는 것 같다. TV든 인터넷이든, 우리를 둘러싼 매체들에서는 젊음만을 찬미하고, 우리 주변에서는 나이에 비해 동안인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목소리가 넘쳐난다. 음식과 운동, 또는 성형이나 의약품 같은 의료 기술에 기대어, 조금이나마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현대인의 모습에서 불로불사(不老不死)를 꿈꾸었던 진시황의 이야기가 먼 옛날의 이야기로만 들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늙음이란 늘 인간에게 인간 존재의 가장 근원적 고민을 던져주는 문제이며, 인간이 가진 유한성을 자각하게 하는 중요한 삶의 모습이기도 하다. 모든 생명체가 그러하듯이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이다. 그러한 까닭에 태어나 자라고, 늙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며, 이러한 삶의 궤적은 고금을 통틀어 누구도 비켜나가지 못하는 길이었다. 옛사람들에게도 이러한 늙음의 문제는 매우 중요한 삶의 고뇌일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남아 있는 수많은 탄로가(歎老歌) 계열 시조들이 이러한 사실을 방증한다.

고려 후기의 학자였던 우탁(禹倬, 1262∼1342)도 탄로가를 남기고 있어 주목된다. “한 손에 가시를 들고 또 한 손에는 막대를 들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려 했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우탁의 이 시조는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늙음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가시와 막대로 표상되는 인간의 인위적인 노력은 늙음이라는 우주적 질서를 막아서지 못한다. 그리고 체념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진솔한 감정이 작품의 문면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조선 중기의 문인이었던 신계영(辛啓榮, 1577∼1669) 또한 여러 편의 탄로가를 남겼다. “사람이 늙은 후에는 거울이 원수로다. 마음이 젊어 옛 얼굴로만 여겼더니, 흰 머리 찡그린 얼굴을 보니 다 죽어가는 모습이네.” 작가는 도입부에서 거울이 원수라 하였다. 그리고 마음은 항상 젊게만 느껴져 나이를 먹는 줄 몰랐는데, 이제 거울을 보니 흰 머리와 찡그린 얼굴만 남아 있어 다 죽어가는 모습이라 하였다. 인간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늙어가는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문득 뜻하지 않은 계기로 인해 늙음을 자각하고 슬퍼하는 경우가 많은데, 신계영의 시조는 인간의 이러한 보편적 상황을 절묘하게 포착하고 있다. 이처럼 옛사람들 또한 늙음의 문제는 보통 고민이 아니었던 것 같다. 특히 위의 시조에도 드러나듯이 늙음이 죽음과 결부될 때 사람들은 늙음을 더욱 부정하고 멀리 달아나려 애써왔다. 그러나 진실은 누구도 늙음의 운명적 시련을 회피할 수 없다는 데 있다.

현대 과학 기술의 발달은 인간이 더욱 오랫동안 젊음을 유지하게 해 주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그리고 100세 시대라는 말처럼, 인간의 수명은 앞으로도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늙음의 문제는 현대 사회의 변화와 함께 이전 시대와는 다른 무게로 다가온다. 요즘 들어 많이 들리는 웰빙(Wellbeing), 웰에이징(Wellaging), 웰다잉(Welldying)이라는 말은 이러한 변화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말이다. 사람답게 살고, 사람답게 늙고, 사람답게 죽는 것을 의미하는 이 말들은 결국 인간이 가진 근원적 고뇌와 함께 이전 시대와는 달라진 삶의 모습을 담아낸다. 그러나 이러한 구호들이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실천되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은 여전히 남는다. 건강한 늙음보다는 젊음만을 추구하는 욕망이 만들어낸 기형적 현상들이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출산율이 극도로 낮아지고 의료 기술이 한층 발달해 가는 상황에서 초고령화 사회는 어느덧 우리 눈앞에 다가와 있다. 이러한 변화에 우리는 충분히 대비되어 있는가를 돌아봐야 할 때다.


조유영 경북대 국어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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