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3단계)

[우리말과 한국문학]새해 소망: 이런 '공부'하게 하소서

2020년 bae 20-01-01 1,358

제목: [우리말과 한국문학] 새해소망: 이런 '공부'하게 하소서

날자: 2020-01-01

매체: 영남일보

전문: 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200101010000046


2020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무언가를 이뤄보겠다며 '작심'을 하곤 하는데, 이를 위한 소망 목록(Wish List)에는 자기계발을 위한 운동이나 공부 등이 주를 이룬다. 특히 목록에 자주 등장하는 각종 공부들은 무한경쟁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키우거나 그러한 세상을 살기 위해 자신을 재충전하기 위한 것이다. 말하자면 자신을 위한 공부인 셈이다. 그런데, 작가 권정생은 공부의 목표를 전혀 다른데 둔다.

혁명가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잘못되고 공정치 못한 일이면 스스로를 희생해서라도 바로 고쳐나가는 사람이다. 개인의 사소한 일이나 사회와 국가의 일 모두가 이와 같은 것이다. 그것이 사람이 공부하는 마지막 목표다.

권정생은 '빌뱅이 언덕'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공부하는 목표는 공정치 못한 일을 바로 고쳐가기 위한 것이며, 그런 사람이 바로 혁명가라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태어나 해방 후에 귀국하여 평생 가난하고 병든 삶을 살아온 권정생은 자신이 읽고 쓴 글을 통해 불공정한 세상을 바루고자 하셨다. 사람들이 쓸모없다고 손가락질하는 강아지똥과 절름발이 소녀, 그리고 강변의 돌멩이와 들꽃들에게 "하나님은 쓸데없는 물건은 하나도 만들지 않으셨어. 너도 꼭 무엇엔가 귀하게 쓰일 거야."라며 그들의 존재를 따뜻하게 품어 안았다. 그것이 권정생 동화의 핵심 주제이며, 그의 글을 읽는 이들을 통해 소외받는 사회적 약자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게 했다.

권정생은 작고 여린 존재들의 가치를 긍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가난한 자들과 부유한 자들, 병든 자들과 건강한 자들이 다 같이 공정하게 살아갈 삶의 방식을 고민했다. 능력 있고 강한 자들이 많은 것을 소유하는 이 세상의 방식에 반대하며, '온 세상 모두'가 함께 누리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세상을 이야기했다. 권정생의 시와 동화는 대부분 이러한 생각들을 담고 있는데, 이는 그의 삶과 공부에서 비롯된 것이다.
권정생은 국민학교 졸업이 최종학력이지만, 성경을 비롯하여 톨스토이, 키에르케고르, 엔도 슈사쿠, 사르트르, 함석헌 등의 저서를 읽으며 그들의 삶과 사상을 자신의 글 속에서 체화하였다. 노년의 권정생은 막대한 인세를 받았지만 예전처럼 가난하게 살았으며, 자신의 재산을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과 북한의 아이들을 위해 사용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처럼 그는 자신이 읽고 배운 대로 살았고, 자신의 글을 통해 세상을 '바로 고쳐' 나가고자 했다. 이것이 권정생의 '공부'이며 '혁명'이다.

지난 봄, 안동 일직에 있는 권정생 생가에서 배낭을 멘 젊은 여성을 만났다. 인천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그녀는 자신이 살면서 힘이 되어준 권정생의 동화를 생각하며 휴가를 내서 그곳을 찾았다고 한다. 활짝 웃으며 떠나는 그녀의 모습은 "너도 꼭 무엇엔가 귀하게 쓰일 것"이라는 동화 속 이야기에 의지하며 삶을 지탱해 왔을 우리들의 뒷모습이리라. 올해 내 소망은 권정생의 '공부'를 제대로 해 보는 것이다. 내가 읽고 배운 대로 행동하기, 그리고 그것을 통해 부당한 세상을 조금씩 고쳐 나가기. 내가 하는 말, 내가 쓰는 글이 그러한 통로가 되길 소망한다.

배지연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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