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3단계)

[우리말과 한국문학] 이문열과 영양 두들마을

2020년 ssy0805 21-03-03 685

제목: [우리말과 한국문학] 이문열과 영양 두들마을

매체: 영남일보

일자: 2020-08-20

전문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200819010002469


이문열 작가 13대조 할머니
음식디미방의 저자 장계향
여성 자기성취에 화두 던져
넉넉한 덕으로 세상을 품은
어머니의 흔적 만날수 있어 


몇 해 전 경북 영양을 다녀왔다. 나는 어릴 적 여름방학 한철을 가곡리 외가에서 보낸 터라 영양은 아련한 추억이 남아있다. 또한 그곳에는 주실마을과 두들마을이 있어 발길을 붙잡는다. 그곳은 조지훈과 이문열의 고향이 아니던가. 그때 학생들과 두들마을을 찾았다가 우연찮게 이문열 작가를 만났다. 나에겐 '사람의 아들'(1979)로 감명 깊었던 작가다. 그는 1948년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6·25전쟁으로 아버지가 월북하는 바람에 1951년 고향 두들마을로 이사하여 어린 시절을 보냈다.

두들마을은 재령 이씨 집성촌이다. 1640년 이시명 선생이 병자호란을 피해서 이 마을에 들어온 이후 그의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게 된다. 그의 부인은 '음식디미방'의 저자인 장계향이다. 이문열의 '선택'(1997)은 13대조 할머니 장계향의 삶에 관한 이야기다. 작품을 쓰게 된 동기는 "이혼은 '절반의 성공'쯤으로 정의되고 간음은 '황홀한 반란'으로 미화된다. 그리고 자못 비장하게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외친다"에서 보듯, 공지영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1993), 이경자의 '황홀한 반란'(1996) 등과 무관하지 않다.

'불성실이든 나태이든 또는 도덕적 부패이든 윤리적 착종이든 그들 나름의 논리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쳐도 선택과 감염은 다를 것이다. 비록 그게 천형이라 할지라도 스스로 선택한 결과라면 기쁘게 견딜 수 있을 것이다… 현혹은 정신적 감염의 딴 이름이다. 온당치 못한 외침들에 현혹되어 너희 시대가 오히려 불행해질까 나는 두렵다.'

이문열은 오늘날 성도덕의 부패와 윤리적 착종으로 사회가 불행해질까 두렵다고 했다. 그가 염려하는 것은 '여성의 자기 성취'라는 이름으로 미화되는 것의 애매함과 수상함, 그리고 간계 등이다. 그는 페미니즘 운동을 펼치는 '너희'들을 향해 준엄한 비판과 질책을 쏟아낸다. 동시에 '삶의 본보기가 될 여인상을 역사 속에서' 찾아낸다. 자신의 할머니 장계향의 억척스러운 삶이다. 그녀는 상처한 이시명과 결혼해 전 부인이 낳은 아이들과 자신의 아이들을 훌륭한 인물로 키워냈다. 그리고 어려움에 처한 이웃들에게 인덕을 펼쳤다.

'나는 일찍이 성취가 있었던 학문과 재예를 스스로 버리고 부녀의 길을 선택했다. 그 부녀의 길에서 가장 큰 것은 어머니의 길이고 그 성취는 자식으로 드러난다… 백 권의 책을 남기고 천 폭의 그림과 만 수(首)의 시를 남겼다 한들 아이들과 아이들의 아이들로 이어지는 끝없는 세상과 어찌 바꿀 수 있으리.'

이문열은 장계향이 스스로 주도적으로 삶을 '선택'했다고 했다. 그것은 자식을 낳아 기르는 어머니의 길이며, 그러한 성취는 학문과 재예, 곧 책이나 그림, 시와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집안과 가문을 번창시키는 일이야말로 여성의 진정한 자기성취라는 주장이다. 이문열은 그녀의 선택을 높게 평가했다. 작가의 말처럼 "세상에 많은 것들은 변하지만 더러는 변하지 않는 것들도 있다" 장계향의 삶에서 배울 만한 점도 적지 않다.

그러나 오늘날의 여성들도 장계향의 선택에 대해 작가와 같은 평가를 내릴까. 2016년 현대 여성의 불평등한 삶을 다룬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이 나왔다. 이 작품은 제41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고,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각광받았다. '여성의 자기 성취'도 시대 사회에 따라 변하는 것들에 속할 것이다. 두들마을에 가면 넉넉한 덕으로 세상을 품은 어머니와 어린 시절 지난한 삶을 살아온 한 작가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김주현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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