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3단계)

[우리말과 한국문학] 사라져 가는 말에 대한 단상

2020년 ssy0805 21-03-03 686

제목: [우리말과 한국문학] 사라져 가는 말에 대한 단상

매체: 영남일보

일자: 2020-08-27

전문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200825010003430


선나, 다부로, 천지삐까리…
우리 지역어가 점점 사라져
젊은층엔 사투리 관심 끌어
없어질 수 있는 말들에게도
소생시킬 가능성을 심어줘 


"야이, 문디야!"는 대구에서 아주 친한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을 때, 너무 반가워서 나누는 지역의 대표적 인사말이다. '문디'는 나환자의 경상도 사투리로, 위의 말을 표준말로 표현하면 "야이, 나환자야!"라고 할 수 있다. 이 사투리 인사말을 표준말로 따지면 엄청난 모욕처럼 들리는 표현이 된다. 그런데 우리 지역의 이상한 인사법은 주로 아주 친한 사이에 사용된 애정이 깃든 표현이다. 이 표현에는 '참으로 오랜만이다' '그동안 큰일 없이 잘 지냈냐?' 등과 같은 온갖 친근한 뜻이 내포되어 있다. 하늘이 내린 벌이라고 해서 천형이라고도 일컫는 문디(나환자)라는 부름말을 앞세워, 가장 애정 어린 표현으로 바꾼 경상도식의 독특한 인사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드물어서 이제는 추억이 되어가고 있다.

'갱시기'란 추억의 음식이 있다. 대구·경북에서 갱시기가 탄생하게 된 동기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전형적인 서민 음식임은 분명했다. 날씨는 쌀쌀하고 딱히 찬거리도 마땅찮을 때, 먹다가 남은 식은 밥, 먹던 김치, 콩나물 외에도 먹다 남은 온갖 잡동사니 반찬 부스러기 등을 집어넣어 뜨끈하게 끓여서 먹는 소위 잡탕 음식이다. 요즘으로 치면 제대로 된 음식은 아니다. 살기 어려웠던 시절 서민 집안에서 한 끼를 때우던 음식이었다. 그런데 이 말도, 음식도 점점 추억이 되어가고 있다. 그런 아쉬움이 있어서인지 이 추억의 음식을 판매하는 곳도 생겼다는 소문을 들었다.

우리 지역에서 추억이 될 말은 많이 있다. 선나(조금), 다부로(도로/도리어), 억수로(많이), 한거석(많이), 허들시리(너무나도), 천지삐까리(많다), 몽창시리(무척), 한발띠(많이), 대낄로(정말/대박), 샜다(많다), 포시랍다(호강스럽다/까탈스럽다) 등은 요즘 점점 사라져 가는 말들이다.

인류학자인 니컬러스 에번스는 자신의 저서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다'에서 노인 한 사람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것은 한 사람이 사용하는 말에 그 사람이 겪어온 생활과 환경, 역사와 문화가 녹아 있기 때문이다. 2010년 12월에 유네스코는 제주어를 소멸 위기 4단계인 '아주 심각하게 위기에 처한 언어'로 분류하면서 제주어의 소멸을 경고했다. 그런데 요즘 우리 지역어도 제주어에 못지않게 점점 사라짐을 절감하고 있다.

그러나 새 기운을 얻어서 많이 알려진 말도 있다. '단디(잘)'가 그 좋은 예다. 지역어 중에는 메시지를 전하는 강도가 표준어보다 강한 경우가 있다면 이 말이 해당된다. '단디'는 일단 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잘해라"라는 기를 불어넣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지역의 은행에서 '단디카드'를 만들어서 유행시킨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젊은 사람들도 이 말을 그리 낯설게 여기지 않는다. 사라질 수 있는 말도 언중들이 관심을 가지면 되살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인 증거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사투리 상품 아이디어 공모전을 3차례 개최한 적이 있다. 당시 언론에도 꽤 소개되면서 사투리에 대한 관심이 많이 높아졌다는 후일담을 들었다. 이후 광주 송정시장 입구에 '역서사소'라는 자그마한 상점이 생겼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각 지역어를 이용한 상품을 만들어서 판매한다고 한다.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어서 사라져 가는 말에게도 소생의 희망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 사라져가는 말에 대한 아쉬움의 단상을 뛰어넘어 이를 소생시킬 방안을 찾아가는 희망의 단상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덕호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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