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우리말과 한국문학] 훈민정음 책이 안동에서 나온 배경_백두현

2021년 admin 21-05-07 440

제목: [우리말과 한국문학] 훈민정음 책이 안동에서 나온 배경

매체: 영남일보

일자: 2021-04-22

전문: 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210420010002978


현존하는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간송본 두권이 전부
안동 일대서 발견된 공통점
오랜세월 보존된 배경에는
안동 유생의 선비정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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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현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보통의 한국인들은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 이후 이 글자가 많은 백성에게 보급되어 쓰인 것으로 생각한다. 세종이 지은 어제서문(御製序文)에서, 한자를 모르는 백성들이 정음 28자를 쉽게 익혀 나날의 쓰임에 편하도록 하라고 말했으니, 이런 오해를 할 만하다. 그러나 세종의 뜻과 달리 반포 후 500년 가까이 한글은 한자를 모르는 보통 백성들에게 보급되지 못하였다. 양반가에서는 가정교육의 하나로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쳤으나 일반 백성에게 가르쳐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훈민정음 해례본 앞머리 예의(例義)에는 정음 28자의 글자꼴과 발음이 설명되어 있다. 해례본은 1446년 9월에 완성되어 목판본으로 간행되었다. 이 책은 세자를 가르친 서연 강의에서 쓰였다. 또 1460년(세조 6)에는 문과 초장 시험에 훈민정음 과목을 넣었다. 4년 뒤인 1464년에는 성균관 생도의 강경(講經) 시험 과목에 훈민정음을 넣었다. 성균관 유생과 문과 시험 응시자들은 훈민정음 해례본을 구득하여 28자를 익히고 그 문장을 통해 문자에 담긴 이치를 깨우쳤을 것이다. 이때 구득한 책은 바로 세종 28년(1446)에 간행한 목판본 훈민정음이었음이 확실하다. 이 책을 제외하면 훈민정음 학습 교재로 쓸 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훈민정음 해례본은 단 두 권뿐이다. 1940년에 전형필이 구득한 간송본과 2008년에 발견된 상주본이 그 두 권이다. 이 두 책은 동일한 목판에서 찍어낸 것이 확실하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1446년에 초판본이 간행된 후 두 번 다시 간행되지 않았다. 간송본과 상주본은 둘 다 안동 일대에서 나온 것이다. 안동 출신 유생이 서울의 성균관에 입학하여 문과 시험 응시를 위해 훈민정음 해례본을 구득했고, 훗날 귀향할 때 이 책을 갖고 내려와 집안에 보존해 온 것이다. 책을 소중히 여기는 선비 정신도 해례본을 수백 년 동안 간직해낸 힘이 되었을 것이다.

훈민정음을 가르치거나 시험 과목에 넣은 기사는 세종실록과 세조실록만 나타나 있다. 세조는 수양대군 시절에 부왕의 한글 출판 사업을 도왔다. 부왕의 뜻을 잘 알고 있었던 세조는 훈민정음을 문과 시험과목에 넣었으나 그 뒤의 왕들은 세종의 뜻을 이어받지 않았다. 문과 시험에 훈민정음을 부과한 제도가 오래 계속되었다면 해례본의 출판이 이어졌을 것이다. 현재 전하는 훈민정음 해례본이 단 두 권밖에 안 되는 것은 훈민정음 시험 제도가 오래 계속되지 못했음을 뜻한다.

조선시대 한글을 널리 보급하고 지켜 낸 공로의 상당 부분은 불교 사찰이 차지한다. 가야산 봉서사는 지방판 최초의 한글 불교서 목우자수심결을 간행했다. 해인사와 예천 용문사, 대구 동화사에서는 한글 포교서 염불보권문을 그 당시의 사투리 글로 출판했다. 안동의 광흥사는 월인석보 등 귀중한 한글본을 간행했고, 풍기 희방사는 훈민정음 언해본이 붙은 월인석보를 목판본으로 찍었다. 해인사 도솔암판 일용작법에는 한글 음절표(반절표)가 처음으로 실려 한글을 쉽게 배울 수 있도록 했다. 불교 사찰에서 나온 많은 한글본 불교서는 조선 후기 수백 년 동안 민중 속에서 한글의 명맥이 이어지는 교량 역할을 했다.

그런데 문화재 절도범의 말을 듣고서 상주본 훈민정음을 불복장품으로 보려는 분도 있다. 월인석보는 부처님의 일생담과 가르침을 담은 책이어서 불복장에 넣을 수 있는 것이나 훈민정음은 그렇지 않다. 상주본에는 앞뒤 표지가 남아 있다. 불복장에 넣는 책은 표지를 없애고 본문만 넣는다.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 상주본 훈민정음은 불복장품의 요건을 전혀 갖추지 못한 책이다.

 백두현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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