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우리말과 한국문학] 혐오의 언어, 차별의 언어, 맥락의 언어_김진웅

2021년 admin 21-06-10 442

제목: [우리말과 한국문학]  혐오의 언어, 차별의 언어, 맥락의 언어_김진웅

매체: 영남일보

일자: 2021-05-13

전문: 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210512010001307

최근 신조어 '○린이' 논란
어린이 향한 우리의 인식이
미숙·불완전한 존재가 아닌
잠재력 무한한 독립체라면
어린이 혐오·차별표현 아냐

2021051201000340500013071
김진웅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한 NGO에서 발표한 성명이 화제다. 아동 권리 실현을 추구하는 이 단체가 주장한 요지는 다음과 같다. 원래 '어린이'는 "아동을 어른과 같이 독립적인 존재"로 대우하는 뜻에서 사용된 단어였으나 최근에 '○린이'라는 신조어는 어린이를 "미숙하고 불완전한 존재로 보는 차별의 언어"로 쓰이고 있다. 따라서 '○린이'와 같은 차별의 언어의 사용을 중단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사실 성명이 발표되기 이전에 온라인을 달군 흥미로운 사건이 있었다. 지난달 23일부터 서울시 산하기관인 서울문화재단이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벌인 캠페인이 발단이었다. "첫 도전을 시작하는 우리는 모두 어린이"라는 취지로 '○린이날' 행사를 진행한 것이다. 나이와 상관없이 첫 도전과 새로운 취미를 시작하는 '○린이' 인증 사진을 올리면 추첨을 통해 경품을 지급하는 행사였다. 이 행사에 대해 일부 누리꾼들은 '○린이'라는 표현이 어린이에 대한 혐오나 차별을 드러내는 표현이므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하게 반발하였고 이 캠페인은 예정보다 이른 시점에 중단이 되었다.

근래 '○린이'라는 표현을 자주 접하게 된다. '주린이(주식 어린이)' '부린이(부동산 어린이)' '코린이(코인 어린이)' 등 많은 쓰임이 재테크와 밀접히 관련된다. 대부분의 경우에 '린이' 대신에 '초보'라는 단어로 교체가 가능하다. 월급을 받아서 내 집 마련이 어려운 시대에 너도나도 자산을 불리기 위해 나서는 세태가 반영된 것이라 짐작해 본다. 앞서 언급한 NGO의 성명서나 서울문화재단의 캠페인에 대한 누리꾼들의 반응은 우리 사회에서 언어에 대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감수성이 과거에 비해 뚜렷이 성장했음을 보여준다. '정치적 올바름'은 인종, 종교, 성 등의 구분에 의해 차별받는 일을 반대하는 입장이다. 최근에 모 정치인이 '외눈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자 이것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는 표현이기 때문에 적절치 못하다는 반박이 나온 사례가 '정치적 올바름'에 입각한 논쟁에 해당이 된다.

'○린이'를 혐오나 차별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자. '○린이'가 혐오 표현에 해당이 되는가? 이에 대해서는 비교적 뚜렷한 대답이 가능하다. 혐오 표현은 사회적 약자인 소수자를 대상으로 드러내는 공개적 멸시, 공격적 태도, 차별적 괴롭힘, 선동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린이'라는 표현 자체는 어린이를 하나의 집단으로 간주하고 그들을 공격하고자 하는 의도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여러 커뮤니티에서 이루어진 논의처럼 '○린이'가 "미숙하고 불완전한 존재"를 가리키기보다는 "성장 가능성과 잠재력이 있는 존재"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쓰이는 것이라는 주장도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린이'를 혐오 표현이라고 규정할 근거는 없다. 그렇다면 '○린이'는 차별적 표현에 해당이 되는가? 타인에 대해 부정적인 판단을 포함한 표현을 차별적 표현이라고 규정한다면 상당히 복잡하고 미묘한 양상이 전개된다. 여기에서 판단의 준거가 되는 핵심적인 요인은 어린이를 향한 사회적 맥락이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어린이'를 사회적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미숙한 존재로 인식한다면 차별의 언어로 인식될 수 있으나 새롭게 시작하는 잠재력이 무한한 존재로 인식한다면 차별의 언어에 해당되지 않을 것이다. 말하는 사람이 스스로를 '○린이'라고 지칭한다면 큰 문제가 아닐지라도 타인을 향해 그리 부른다면 문제의 소지가 생길 만하다. 결국 문제는 '○린이'가 아니라 '어린이'다. 우리가 아이들을 독립된 존재이자 사랑하는 대상으로 받아들인다면 모두 사라질 시빗거리이다.

 김진웅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QUICK MEN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