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우리말과 한국문학] '덴동어미화전가', 절망의 시대를 살아가는 방법_조유영

2021년 admin 21-06-10 413

제목: [우리말과 한국문학]  '덴동어미화전가', 절망의 시대를 살아가는 방법_조유영

매체: 영남일보

일자: 2021-05-20

전문: 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210518010002065


끊임없는 시련과 역경에도
서로의 고통 위로한 공감의
내방가사 '덴동어미화전가'
절망속에도 소통·연대만이
희망을 부르는 유일한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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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영 제주대 국어교육과 교수

여전히 올해 봄도 코로나19가 극성이다. 팬데믹 상황 속에서 마스크 착용과 거리두기는 우리에게 일상이 된지 오래다. 이런 답답한 상황이 1년이나 지속되다 보니, 불안감과 우울감을 호소하는 이들도 주변에 많다. 또한 팬데믹 장기화에 의한 경기침체는 우리 사회의 경제적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켜 사람들에게 분노와 절망을 안겨주고 있기도 하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희망보다는 절망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시대에 나는 '덴동어미화전가'를 다시 떠올린다.

'덴동어미화전가'는 경북대도서관본 '소백산대관록'에 수록되어 있는 장편의 내방가사다. 내방가사는 조선 후기 영남지역 여성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생활 감성과 풍부한 예술성을 담아낸 고전 여성 문학의 한 갈래이다. '덴동어미화전가' 또한 조선 후기 경북 순흥 지역 부녀자들의 봄날 화전놀이를 기록한 작품으로, '덴동어미'라는 한 여성의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이 액자식 구성으로 담겨 있어 주목된다.

이 작품은 봄이 무르익는 음력 삼월, 마을의 부녀자들이 비봉산으로 화전놀이를 떠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한창 화전놀이를 즐기던 중, 17세의 청상과부가 자신의 신세타령과 함께 개가(改嫁)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게 되는데, 이를 들은 덴동어미가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자신이 살아온 삶의 굴곡을 늘어놓는다. 덴동어미는 순흥읍내 이방의 딸로 16세에 예천읍내 장 이방의 아들에게 시집을 갔지만, 한해 만에 남편을 잃는다. 다시 개가하여 상주읍내 이상찰의 아들에게 시집을 가지만 시댁이 망해 남편과 함께 유리걸식하는 신세가 된다. 이후 경주의 큰 여각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지만 갑작스러운 괴질에 남편도 죽고, 돈을 빌려준 사람들까지 모두 죽는 암담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세 번째로 옹기장사를 하는 황 도령을 만나 함께 살게 되지만, 황 도령 또한 폭우로 인한 산사태로 죽게 되고 그녀는 다시 절망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주막집 아낙의 권유로 네 번째 남편인 엿 장사 조 첨지를 만나 아들까지 낳고 잠시 행복해지지만, 엿을 고다 생긴 화재에 또다시 남편을 잃고 아들까지 심한 화상을 입는다.

이처럼 덴동어미의 삶은 끊임없는 시련과 절망의 연속이었다. 인생을 바꾸기 위한 그녀의 노력은 매번 가혹한 운명에 의해 좌절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화상으로 불구가 되어 버린 어린 아들 덴동이를 업고 예순이 넘어 고향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이러한 혹독한 시련과 절망 속에서도 삶을 살아낼 수 있었던 것은 주변의 사람들 때문이었다. 유리걸식할 때에는 여각의 주인이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고, 황 도령과 사별하였을 때는 주막집 아낙이 위로해 주었으며, 조 첨지가 죽었을 때는 이웃집 여인의 말에서 삶의 의지를 찾았다. 고향에 돌아왔을 때도 삶에 고단한 그녀와 아이를 안아 준 것은 이웃집 노인이었다. 이렇듯 덴동어미는 그녀에게 주어진 삶의 질곡을 사람들과 함께 극복해 나갔고, 그녀 또한 화전놀이에서 만난 젊은 청상에게 진실한 위로를 건네었다.

'덴동어미화전가'는 연대와 공감의 노래다. 조선 후기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들은 그들에게 가혹했던 사회적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해결하기는 어려웠지만, 그들만의 방식으로 서로의 고통을 위로하고 연대하면서 함께 살아갔다. 절망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덴동어미화전가'에서 보여주는 주변 사람들과의 소통 그리고 공감과 연대이다. 그것만이 절망 속에 머무르지 않고, 다시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조유영 <제주대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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