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우리말과 한국문학] 한글 금속활자를 자세히 보다_백두현

2021년 admin 21-08-19 473

제목: [우리말과 한국문학] 한글 금속활자를 자세히 보다_백두현

매체: 영남일보

일자: 2021-07-15

전문: 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210714010001686

최근 발굴된 한글금속활자
'능엄경언해'의 조판에 쓰인
동국정운식 표기 한글활자
다양한 크기와 모양을 통해
세계최고의 문자임을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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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현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지난 6월 서울 공평동에서 건물 신축을 위한 터파기 공사를 하던 중 말 그대로 보물단지가 발견되었다. 상부가 깨어진 독 항아리 속에서 세종대부터 선조 초기에 이르는 기간의 금속활자와 금속제 유물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금속활자의 나라, 한국이 그 명성을 드높일 수 있는 보물이 발견된 것이다. 고려의 금속활자 전통을 이어받은 조선의 세종은 금속활자 주조와 천문 기기 제작에서 큰 발전을 이루어냈다. 이번 발굴에서 이 두 가지 유물이 한꺼번에 나왔고, 국민의 관심은 한글 금속활자에 쏠렸다. 세종이 만든 최초의 한자 금속활자는 경자자(庚子字 1420년)이고, 이를 개선하여 갑인자(甲寅字 1434년)를 주조했다. 이번에 발굴된 한자 활자에는 세종이 만든 갑인자가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한글 금속활자로서 그 연대가 가장 빠른 것은 1447년에 간행한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에 쓰인 활자다. 이 문헌들에 쓰인 한글 활자는 이번에 나오지 않았다. 두 번째 만들어진 한글 금속활자는 을해자(乙亥字 1455년)의 한글자다. 이번에 발견된 활자 중에 을해자 한글자가 있다. 을해자는 세조 즉위년에 만들어져 능엄경언해 초간본(1461)을 찍는 데 쓰였다. 이 책에 쓰인 동국정운식 한자음 표기 한글 활자가 이번에 처음 나타났다. 이 활자로 찍은 책 속의 글자는 우리가 이미 보아온 것이나 실물 활자는 없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한글 활자 중 30여 개의 을해자가 있으나, 동국정운식 한자음 표기를 확실하게 보여 주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 발굴된 한글 금속활자 중에는 쌍히읗, 순경음 미음, 받침에 ㄹ과 여린 히읗을 합쳐 쓴 글자 등의 동국정운식 한자음 글자가 있다. 소리의 고저를 표시하는 부호인데 방점(傍點)이라 부른다. 이번에 발굴된 활자 중에 방점이 붙은 글자는 없었다. 그 이유는 방점을 활자와 별도로 만들어 조판했기 때문이다.

발굴된 한글 금속활자의 크기는 큰 자, 중간자, 작은 자, 아주 작은 자로 네 가지다. 그런데 하나의 문헌에 쓰인 활자는 보통 두 가지, 많으면 세 가지다. 네 가지가 한꺼번에 나온 것은 여러 해에 걸쳐 쓴 활자들을 한데 모아 두었기 때문이다. 자모자 종류로 보면, 여린 시옷자와 시옷과 기역을 합쳐 쓴 병서자도 발견되었다. 그러나 세 글자를 합쳐 쓴 병서자와 순경음 ㅂ자는 나오지 않았다.

활자의 글자는 요즘의 도장처럼 뒤집어 새겨져 있고, 종이에 찍으면 바른 글자가 나온다. 발굴된 활자 중에 '옷'자가 있었다. '옷'자는 뒤집어도 그 모양이 '옷'이다. '짱'자도 같이 나왔다. 이 두 활자를 나란히 놓으니 '옷짱'이 되었다. '옷짱'은 옷을 잘 입는 사람인데! 참 귀여운 낱말이군! 활자를 분석하는 자리에서 같이 보던 분들과 우스개를 나누기도 했다.

세종은 훈민정음을 반포한 후 세 가지 인쇄기술을 모두 시험해 보았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목판에 한글자를 새겨서 인쇄한 책이고,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은 한글 금속활자를 주조하여 인쇄한 책이다. 동국정운에서는 한글자를 나무활자로 조각하여 인쇄했다. 목판 한글, 금속활자 한글, 목활자 한글을 모두 책 출판에 적용한 것이다. 이 세 가지 인쇄 방식은 출판의 전범이 되어 대한제국기까지 이어졌다.

이번에 발견된 유물에는 주야 겸용 시계인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가 있다. 이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만들지 못한 발명품이다. 세종이 만든 세계 최고의 문자인 한글, 한글을 새긴 금속활자, 정밀한 눈금이 새겨진 해별 시계의 고리를 들여다보면서 내 마음은 저절로 임금님 앞에 엎드려졌다.
백두현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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