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우리말과 한국문학] 장군의 귀환과 환대의 윤리_배지연

2021년 admin 21-08-19 530

제목: [우리말과 한국문학] 장군의 귀환과 환대의 윤리_배지연

매체: 영남일보

일자: 2021-08-19

전문: 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210818010002243


홍범도 장군 유해 고국 귀환
강제이주 다룬 소설 '떠도는 땅'
한인이주 역사와 실상 재현
이땅에서 환대받지 못하는
이주민 향한 태도 성찰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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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연 대구대 인문과학연구소 교수

지난 광복절에 독립투쟁에 생을 바친 홍범도(1868~1943) 장군의 유해가 서거 78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항일 독립투쟁사의 기념비적 전투인 봉오동 전투의 영웅 홍범도 장군은 조선과 간도, 연해주, 그리고 중앙아시아에서 치열하고 지난한 삶을 살다가 고국이 광복된 지 76년 만에 비로소 귀환한 것이다. 장군의 귀환은 항일투사의 귀환이기도 하지만, 약소국의 백성이기에 고국을 떠나 머나먼 땅을 떠돌았던 이의 귀환이며, 무엇보다도 그의 귀환에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힘들던 시기에 국경을 넘어 만주와 연해주로 이주한 이들과 그 후손들이 1937년 소비에트에 의해 강제 이주된 사건을 다룬 '떠도는 땅'에는 홍범도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삶이 켜켜이 쌓여있다. 이 소설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까지 40일간 시베리아횡단철도로 강제 이주된 한인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다수의 이주민들이 풀어내는 복수(複數)의 목소리를 통해 1937년 강제이주와 겹쳐지는 다양한 이주의 역사와 실상들을 재현하고 있다.

'떠도는 땅'에서 펼쳐지는 그들의 서사는 1860년대 이후 한인들의 이주의 역사를 재현하고 있지만, 연해주에 거주하는 다양한 인종과 민족의 사람들과 그들의 서사도 함께 배치되어 있다. 간도와 연해주를 오가며 생계를 꾸리고 캄차카반도까지 이동하여 노동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러시아 한인들의 지난한 삶과 함께 연해주의 원주민이 자신의 터전을 빼앗기는 흔적 등이 그려진다. 이 과정에서 '떠도는 땅'은 여타의 소설들처럼 조선을 떠나온 이주민들과 그들의 후손들이 민족을 상상하는 방식을 다루면서도 민족과 인종, 계급과 이데올로기가 교직하는 다양한 이주와 이동의 서사 속에서 민족 그 너머를 사유하게 하는 상상력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도 이것을 시작으로 떠돌며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소설 속 인물의 말은 '고려인'이라고 불리는 러시아 한인들의 150여 년 이주사를 요약하고 있다. 19세기 말 조선 국경을 넘어 러시아로 이주한 이들은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어 수십 년간 정착했지만, 1990년대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 등의 개별 국가로 독립하면서 다시 그 땅을 떠나 연해주와 그 국경 너머 중국과 한국으로 이주하고 있다. '떠도는 땅'에서 그려지듯이 러시아 한인들은 인종과 언어, 이데올로기와 문화 등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고, 많은 시간을 환대의 부재 속에서 고통받기도 했다. 그런데 선조들의 고국이라는 한국으로 넘어온 러시아 한인 4세들은 이 땅에서도 환대받지 못하고 또 다른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다.

이번 광복절의 '장군의 귀환'을 통해 그와 같은 시간과 역사를 살았던 러시아 한인들의 삶을 기억하는 계기가 마련되길 바란다. 그보다 더 바라는 것은 민족과 인종, 이데올로기를 넘어 인간을 인간으로서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환대의 윤리를 숙고하는 것이다. 환대는 자신이 머무는 공간으로 타자를 들어오게 하고 그를 향한 적대를 거두어들임으로써 우정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다. '떠도는 땅'에서 그려진 러시아 한인들을 향한 환대의 부재에 분노한다면, 오늘날 국경을 넘어 이 땅에 들어온 이들을 향한 우리의 태도를 성찰해봐야 할 것이다. 나는 주변에 있는 낯선 이주민 혹은 나와 (성별, 나이, 계급, 종교 등이) 다른 누군가에게 내 자리를 내어줄 수 있는지.
배지연 <대구대 인문과학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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