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우리말과 한국문학] 근대문학과 팔공산_김주현

2021년 admin 21-09-16 400

제목: [우리말과 한국문학] 근대문학과 팔공산_김주현

매체: 영남일보

일자: 2021-09-09

전문: 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210908010000978


숱한 역사와 전설 품은 名山
한국 근대문학의 중요 소재
수려한 팔공산의 정취 표현
대구의 문인 이상화·장혁주
삶과 문학을 음미해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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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현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대구에는 팔공산이라는 명산이 있다. 아니 영남의 명산이다. 팔공산은 수많은 역사와 전설을 품고 있다. 한국 근대문학에서도 팔공산은 빠지지 않는다. 최남선은 '경부철도의 노래'에서 "누구누구 가리켜 팔공산인지/ 일곱 고을 너른 터 타고 있으되/ 수도동의 폭포는 눈이 부시고/ 동화사의 쇠북은 귀가 맑도다"라고 노래했다. 그는 수도동 폭포와 동화사 쇠북을 팔공산의 명물로 소개한 것이다.

한편 대구의 근대 시인 이상화는 '지반정경(池畔靜景·1924)'을 발표했다. '못가의 그윽한 풍경'이라는 뜻이다.

저문 저녁에 쫓겨난 쇠북소리 하늘 너머 사라지고/ 이날의 마지막 놀이로 어린 고기들 물놀이칠 때/ 내 머릿속에서 단잠 깬기억은 새로이 이곳에 온 까닭을 생각하노라/ 이 못이 세상 같고, 내 한 몸이 모든 사람 같기도 하다!/ 아 너그럽게도 숨막히는 그윽일러라, 고요로운 설움일러라.

이 시는 '파계사 용소에서'라는 부제가 달려있는데, 이상화가 팔공산 파계사 용소를 방문하고 거기서 느낀 정취를 읊은 것이다. 파계(把溪)는 아홉 계곡의 물줄기를 한곳으로 모았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물줄기를 하나로 모은 곳이 용소이고, 그 연못 위쪽에 파계사가 있다. 이상화는 파계사 쇠북소리를 듣고, 용소에서 어린 물고기들이 뛰노는 것을 보면서 단잠을 깨고 '이곳에 온 까닭을 생각'한다. 그는 1923년 9월 동경에서 관동대지진을 빌미로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을 학살하는 참상을 목도하였고, 그 역시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였으며, 이듬해 봄 유학도 포기한 채 귀국한다. 그해 여름 파계사에 들른 것으로 보인다.

이상화는 연못과 세상, 나와 모든 사람이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은 4연의 구절 "내 가슴에 나도 몰래 숨었던 나라와 어울어지다"와 연결되어 의미를 형성한다. 곧 일제 강점이라는 현실이 자리해 있다. 대자연의 그윽함과 고요 속에서 시인은 결국 설움을 느낀다. 그것은 고요 속에서 현실을 직시한 후 새로운 행동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가 1925년 한국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에 가담하고, 1926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쓰게 된 연유도 이 시에서 찾을 수 있다. 한편 대구 출신 소설가 장혁주는 '팔공산 바위 위에서'(1936)라는 산문에서 팔공산 암자에서의 체험을 그리고 있다. 그곳에서 "죽음과 삶, 그다지 큰 차이가 없이 느껴졌다. 명예, 질투, 자긍, 그런 것까지 한꺼번에 내 머리를 지나갔다. 그러고 나는 그것을 초월할 수 있었다. 나는 '나'를 버릴 수 있고, '나'를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의 체험은 같은 해 '월희와 나'라는 소설에 더욱 자세히 형상화되어 있다.

소설 속 화자인 '나'는 월희와 팔공산 삼인암과 극락굴에 이르렀다. 월희는 소설가 백신애를 모델로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각기 가정이 있지만, 현실에 염오를 느끼고 동반 자살하러 간 것이다. 물론 전향에 따른 환멸감과 애정 도피도 한몫을 한다. 극락굴에는 옛날 원효스님이 화엄경론을 집필할 때 잘 풀리지 않은 부분이 있어 이곳에서 수행하던 중 바위가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의문이 풀려 완성했다는 전설이 있다. 나는 암자로 내려와 부처에 공양을 올리면서 '나반존자'를 외는 스님의 독경소리를 들으며 '구원받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삶의 나락에서 생존 의지를 발견하고, 자기 구원이라는 깨달음에 이른 것이다.

팔공산에는 아름다운 계곡과 봉우리가 있고, 곳곳마다 유적과 이야기가 있다. 팔공산을 거닐며 근대 문인들의 삶과 문학을 음미해보는 것도 또한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김주현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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