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우리말과 한국문학] 수어는 독립된 언어다_김진웅

2021년 admin 21-12-10 327

제목: [우리말과 한국문학] 수어는 독립된 언어다_김진웅

매체: 영남일보

일자: 2021-10-28

전문: 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211026010003255

농인들의 의사소통법 手語
손짓과 비수지신호로 표현
음성언어 습득 과정과 동일
음운론·형태론의 구조 갖춘
독립 체계, 문법을 지닌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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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웅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듣기나 말하기가 불가능한 농인들은 수어를 사용하여 의사소통한다. 수어에서는 손과 손가락의 모양(수형), 손바닥의 방향(수향), 손의 위치(수위), 손의 움직임(수동)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또한 표정이나 몸의 움직임과 같은 손 이외의 요소, 즉 비수지신호도 수어의 의미 전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가령 '맛있다'를 수어로 표현할 때 손의 모양과 위치, 동작뿐 아니라 얼굴의 표정도 의미에 영향을 미친다(이것이 코로나 시대에도 수어 통역사가 마스크를 쓰지 못하는 이유이다). 같은 손동작에 평범하게 미소 띤 표정일 때는 '맛있다'라는 평서문이 되지만, 입을 'O' 모양으로 벌린 표정을 지으면 '맛있니?'라는 의문문이 된다.

국립국어원의 설명에 따르면 '한국 수어'는 '한국 수화 언어'를 줄인 말로서 한국어나 영어와 같은 독립된 언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한국 수어는 한국어를 그대로 손으로 표현한 것이 아니라 독립적 체계와 문법을 지닌 언어라는 뜻이다. 손동작을 사용하여 의미를 전달하는 행위는 수어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손가락 두 개로 '브이 자'를 만들어 승리의 순간을 축하하곤 한다. 이와 같은 행위를 제스처라고 부른다. 그러나 독립된 언어로서 인정되는 수어와 달리 제스처는 비언어적 의사소통으로 분류된다.

수어에 음운론, 형태론과 통사론에 해당하는 구조가 존재한다는 다양한 연구 결과는 수어가 독립된 언어임을 증명한다. 우선 음성 단위의 자질들과 수형의 유사성은 일찍이 주목을 받았다. 음성 언어의 개구도는 발음할 때 입을 벌리는 정도에 따라 조음 방식을 분석하는 척도이다. 개구도에서는 'ㅍ'과 같이 입이 완전히 닫히는 자음의 폐쇄음으로부터 'ㅏ'와 같이 완전히 열리는 모음까지를 양극으로 하여, 그 사이에 마찰음, 유음 등의 여러 음소가 분포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수어에서 수형은 주먹 모양으로 완전히 닫은 수형과 손바닥을 완전히 편 수형을 양극으로 하여 손바닥을 구부리거나 꺾은 형태의 수형이 그사이에 분포한다. 수어의 형태론적 규칙으로 파생 현상이 널리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맛있다' '관계있다'를 의미하는 어근 수어에 부정을 나타내는 의미의 접사로 손을 터는 동작이 결합되면 '맛없다' '관계없다'라는 파생어가 생성된다. 수어에는 통사적 특성도 나타난다. 앞서 살펴본 '맛있니?'의 경우처럼 의문문을 표시하기 위해 손동작이 아닌 비수지신호가 사용된다.

언어 습득 과정에서도 수어는 음성 언어와 상당한 유사성을 드러낸다.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 부모를 둔 농인 아동의 수어 습득 과정에 대한 다수의 연구에 따르면, 수어를 배우는 농인 아동들은 음성 언어를 습득하는 아동들과 동일한 발달 단계를 거친다. 각각은 언어 습득 초기에는 쉬운 어휘나 문법 형식 등을 습득하고 발달이 진행될수록 고급의 언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농인 아동은 수어를 시각적인 제스처 체계로 받아들이지 않고 형식적이고 구조적인 언어 체계로 이해하기 때문에 음성 언어 습득 과정에서 일어나는 실수와 유사한 실수를 저지른다. 형태론적 규칙을 일반화하여 적용한다든지, 부모들이 교정해 주는 형태를 무시한다든지, 화자와 청자를 가리키는 대명사를 혼동하는 등의 실수가 흔히 나타난다.

1960년대까지도 수어는 상징적이지 않고 시각적이기 때문에 언어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견해가 대다수였다. 시각적으로 구성된 수어는 정확성, 섬세함, 유연성 등이 부족하여 추상적 사고에 적정하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윌리엄 스토키를 비롯한 언어학자들의 부단한 연구를 바탕으로 수어는 독립된 언어로 인정받게 되었다.
김진웅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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