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우리말과 한국문학] 경주에 가거든 : 동리목월문학관과 불국사 답사기_배지연

2022년 admin 22-05-25 366

제목: [우리말과 한국문학] 경주에 가거든 : 동리목월문학관과 불국사 답사기_배지연

매체: 영남일보

일자: 2022-04-14

전문: 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220413010001706


古都 경주로의 인문학 기행
목월과 동리의 문학적 자취
깃들어 있는 생가와 문학관
무수한 작품 배경 된 불국사
우리 문학의 토대가 된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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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연 대구대 인문과학연구소 교수

경주 시내에 벚꽃이 비처럼 흩날리던 지난주, 대구 지역 공무원들과 경주로 인문학 기행을 다녀왔다. 동리목월문학관이 위치한 토함산 자락을 향하던 길에 눈부신 꽃잎들 사이로 봄을 만났다. 3년 만에 비로소 마주한 봄날, 일행은 동리목월문학관과 불국사를 탐방하며 오전 일정을 마무리했다.

천년 고도(古都) 경주는 역사와 문화는 물론 우리 문학의 토대가 된 보석 같은 도시이다. 이러한 경주에 매료된 문인들은 그에 관한 글을 남기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경주에서 나고 자란 동리와 목월에게 경주는 삶과 문학의 모태이자 영감을 불어넣는 주요한 문학 공간이었다. 동리의 경우 초기 소설 '화랑의 후예'와 '무녀도'를 비롯해 만년의 자전소설 '만자동경' '우물 속의 풍경'에 이르기까지, 경주는 동리 소설의 근원으로서 자리잡고 있다. 목월에게도 경주는 그렇다. 목월의 시 '청노루'나 '윤사월' 등에는 고향의 정서가 짙게 배어있다. 송홧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꾀꼬리 울던 고향 마을을 떠올리며 "윤사월 해 길다"던 목월. 그에게 시적 영감을 불러일으켰던 고향 경주에는 지금도 목월의 시비(詩碑)가 곳곳에 세워져 있다.

이처럼 경주가 낳은 두 작가의 문학적 위업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된 곳이 동리목월문학관이다. 특히 동리와 목월의 문학적 자취를 보다 생생하게 살펴보길 원한다면 그들의 생가를 비롯해 '무녀도'의 배경이 되는 예기소와 금장대를 답사하면 좋다. 이번 문학기행에서는 목월을 비롯한 많은 문인들이 문학적 소재로 삼은 불국사에서 그들의 정취를 느껴보았다.

흰 달빛/자하문(紫霞門)//달 안개/물소리//대웅전(大雄殿)/큰 보살//바람소리/솔소리//범영루(泛影樓)/뜬 그림자//흐는히/젖는데//흰 달빛/자하문//바람소리/솔소리 (박목월 '불국사' 전문)

체언으로만 이루어진 목월의 이 짧은 시는 불국토의 이상을 현실 세계에 실현한 불국사의 신비와 가을밤의 그윽한 분위기가 절묘하게 뒤섞임으로써 시각과 청각적 이미지의 교감을 느낄 수 있게 한다. 목월은 또 시 '청운교'에서 "층층다리를" 밟고 오르며 "서라벌의 빛나는 궁창(穹蒼)"과 "칠색(七色) 가람의 우람한 광망(光芒)"을 노래하는 등 불국사의 아름다움을 시적으로 형상화했다. 청운교 계단을 예찬한 것은 목월만은 아니었다. 소설가 이태준은 고운 치맛자락이 쓰다듬듯 오르내렸던 "신라 사람들이 밟던 층계"를 상상하기도 했다.

목월의 시, 태준의 산문, 그리고 불국사에 담긴 '삼국유사'의 이야기들로 함께 한 이날 불국사 답사는 꽃비 내리는 봄날의 햇살과 함께 기억될 것 같다. 하지만 불국사를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공무원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경주가 가진 무궁무진한 콘텐츠에 비해 정작 갈 만한 곳이 없어서 아쉽다고. 그분의 말씀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안타깝게도 경주는 몇몇 유적지나 보문단지와 같은 명소를 제외하고는 소위 '핫플'이나 '맛집' 등으로만 기억되고 있다. 이날 함께했던 불국사에서의 기억처럼, 천년 고도 경주에 담긴 오래된 이야기들에 지금 여기의 이야기들, 꿈과 기억들이 멋지게 엮일 수 있다면 경주의 천년은 '오래된 미래'로 우리 곁에서 오랫동안 함께 할 것이다. 경주에 가신다면, 경주에 담긴 오래된 이야기들에 귀를 열어두고 그들이 들려주는 길을 따라 한 번 가보시길 권한다.

배지연 대구대 인문과학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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