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우리말과 한국문학] AI시대, 두번째 르네상스 맞은 국문학_안주현

2022년 admin 22-08-24 326

제목: [우리말과 한국문학] AI시대, 두번째 르네상스 맞은 국문학_안주현

매체: 영남일보

일자: 2022-06-02

전문: 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220601010000060


지역에서 발굴된 한글편지
선조들이 남긴 문학적 유산
빅데이터 통해 언어자료 구축
AI시대 인간의 삶 고찰하는
국문학의 새 부흥기 맞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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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주현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연구교수)

올해 초 필자가 근무하는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BK교육연구단에서는 "국어국문학, 전공 살려 취업하기"라는 특강을 기획했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굳이 전공을 꼭 살려야 하나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요즘 같은 시대기 때문에 전공 지식에 대한 중요성이 더 부각되는지도 모르겠다. 대신 국어국문학에도 이제 AI, 빅데이터, 메타버스와 같은 개념들이 일상처럼 섞여 들어오고 있다.

오랫동안 만난 친구들조차 필자의 전공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지인들이 필자의 전공에 대해 물어보면 보통 '국어사'나 '국어음운사'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대부분 "어렵지 않아?", 또는 "너무 고리타분하거나 지루하지 않아?"라고 되묻는다. 그런데 "역사 자료로 '코퍼스'를 구축하고, 아! 코퍼스는 언어 자료로 만든 빅데이터야, 'POS annotation' 같은 주석 작업을 진행한 다음에 그 결과를 'python'이나 'R' 같은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통계적으로 분석해"라고 말하면, 갑작스럽게 엄청난 전문가라도 된 것처럼 태도가 달라진다. 우리는 AI나 빅데이터처럼 인간의 능력으로는 다룰 수 없는 양의 정보를 처리하는 것이 현대적이며, 고도로 발전된 기술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양의 정보를 처리해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면 과거 우리 선조들이 남긴 흔적들이 그렇게 무가치하지는 않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현풍곽씨언간'은 우리 지역에서 발굴된 한글편지로, 규모면에서나 내용면에서나 매우 가치가 높은 자료이다. 현풍곽씨언간은 1989년 진주하씨(晋州河氏)의 무덤을 이장하다가 다른 유품들과 함께 발견됐다. 편지의 이름이 현풍곽씨언간인 이유는 이 편지의 주 발신자가 진주하씨의 남편인 곽주(郭澍·1569~1617)이기 때문이다. 17세기 초반에 쓰인 한글편지를 읽는 것이 고리타분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실제로 그 내용을 살펴보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과 다를 바가 없다.

이 글의 제목인 "괴삿기를 복녜 대셩의 품에란 생심도 녀치 마소(고양이 새끼를 복례, 대성의 품에는 절대로 넣지 마소)"는 현풍곽씨언간 42번째 편지(편지 순서는 백두현 교수 주해서의 순서이다)의 마지막 구절이다. 곽주는 아내에게 편지를 쓰면서 이제 겨우 돌잡이를 한 아들을 위해 고양이 새끼를 얻어다 애완동물로 보낸 것이다. 애묘인, 고양이 집사가 비단 오늘날에만 특별히 생긴 것이 아니라는 것을 400년 전 편지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어린 자식에게 고양이를 보내면서 그 위의 형이나 누나는 절대로 고양이를 품지 못하게 하라고 당부하고 있다는 점이다. 12번 편지에서는 딸들인 '정녜' '정녈이'가 밖에 나가서 사내 아이들과 못 놀게 하라고 몇 번이나 말하고 있으며, 부인인 하씨에게도 밤에 절대로 혼자 자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며 제대로 '고나리'('관리'에서 파생된 신조어)를 하고 있다. 현풍곽씨언간은 전체 167건 중 상당수가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정냥'의 머리에 약은 잘 발라주고 있는지 걱정이고, '대임이'가 뜸 뜨는 것을 무서워해 걱정이며, 추운데 '정녜'의 바지는 제대로 해 주었는지 걱정이다.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할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국문과 가서 뭐 해 먹고 살래?"였다. 여전히 인문학도들의 취업이 어렵지만, 대기업의 빅데이터나 언어 처리 관련 모집 요강에 '국어학자, 언어학자, 언어 처리 전문가(우대)'라는 문구를 보면서 빅데이터, AI가 오히려 사람과 삶을 돌아보게 하는 '두 번째 르네상스'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안주현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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