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우리말과 한국문학] 神을 추구한 소설가 김동리의 겸허함과 욕망_전계성

2022년 admin 22-11-24 215

이성의 한계를 겸허히 수용
神을 내포한 인간상 형상화
무녀도·등신불의 작가 김동리
인간의 유한성을 초월하여
인간내부 신성의 가치 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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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계성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연구교수


인간은 우주 먼지에서 진화된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창조되었는가. 인간을 '저절로 생긴 존재'라고 하기에는 오장육부와 피와 살과 뼈가 맞물려 돌아가는 인체의 신비가 너무나 놀랍다. 반대로 인간을 '피조물'이라고 하기에는 인간을 만들었다는 조물주의 존재가 도대체 실감 나지 않는다. 자신이 '저절로 생긴 존재'라고 믿는 사람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신의 존재 자체를 인간의 발명품으로 여기면서 신에게 의존하는 것이 인간 삶에 해를 끼친다고 말한다. 반대로 '피조물' 의식이 있는 사람은 조물주가 이 세계를 다스리고 있다고 믿으면서 한계 앞에 무능력한 스스로를 바라보고 조물주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찾는다.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이 두 가지 입장은 여전히 미결이다. 아직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완전히 설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설령 신의 존재를 인정한다고 해도 한 가지 남는 문제가 있다. 신의 뜻과 인간 개인의 뜻이 다를 경우, 인간은 신과 상관없는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결정하며 살겠다는 의지를 표명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유한성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소설가 김동리는 인간 이성의 한계를 극복하는 인간상을 마련하기 위해 소설을 창작했다. 그는 인간 이성의 한계를 초월할 신성을 인간 내부에서 찾았다. 학창 시절에 어머니의 영향으로 교회를 다녔지만 세계문학을 너무 많이 읽은 까닭에 김동리는 신앙을 가질 수 없었다고 한다. 그에게 세계문학이란 자유와 욕망의 실현이었고 많은 작품을 읽은 그에게는 이미 신앙이 들어갈 자리가 남아있지 않았다. 기독교 신성은 오히려 자유를 사랑한 김동리에게 반감을 일으켰다. 그는 이상적 인간상으로 제시한 '신을 내포한 인간'을 샤머니즘이나 불교에 연결하고 그런 종교성마저도 초월하는 인간의 모습을 여러 작품에서 형상화한다.

무당 모화가 샤머니즘의 신들린 상태를 넘어 물과 하나가 되는 '무녀도'의 상징적인 장면은 신이 들려서 초월적으로 보였던 인간의 단계를 높인다. 모화는 물과의 동화 의지를 작동함으로써 스스로 초월의 경지로 들어가는 것이다. 또한 '등신불'에서 자기 몸을 불살라 공양하고 불상이 됨으로써 뭇사람의 소원을 들어주는 만적의 등장은 불교적 신성을 넘어서는 인간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작품들이 지향하는 가치는 인간 내부의 신성이다. 이러한 신성을 끌어내기 위해서 기독교의 신성은 제거 또는 대항의 대상이 되었고, 샤머니즘 및 불교의 신성은 새로운 인간관을 제안하기 위한 발판이 되었던 것이다.

김동리는 왜 신의 전유물이었던 신성을 인간에게 덧씌우려고 했을까. '사반의 십자가'에서 천국 복음을 설파하는 예수에 맞서 현실론을 펼치고,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매달려서도 담담히 죽음을 수용하는 사반의 초월성은 아이러니하게도 신성에 매달린 김동리를 발견하게 한다. 이성으로 가득한 우리 현대인은 늘 한계에 직면하면서도 신의 도움으로 문제를 해결했다는 소리를 듣기는 죽어도 싫고, 혼자 힘으로 해냈다고 외치고 싶고 자기 이름을 높이고 싶다. 그나마 김동리는 인간 이성의 한계를 겸허히 수용하고 신을 내포함으로써 한계를 초월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지금의 우리보다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절로' 생겼을지 '피조물'일지 모를 인간의 유한성에 기어코 신성을 담아내려던 김동리를 보면서, 신과 동등해지고자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의 욕망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전계성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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