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3단계)

[우리말과 한국문학] '혐오 표현'에 갇힌 사회

2020년 ssy0805 21-03-03 499

제목: [우리말과 한국문학] '혐오 표현'에 갇힌 사회

매체: 영남일보

일자: 2020-01-09

전문: 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200107010001264


특정 대상의 편견 분출시켜
지속적 확대 재생산해 선동
물리적 폭력 혐오범죄 유발
우리 모두가 심각성을 인지
서로 존중·이해하는 노력을


인기 걸그룹의 한 멤버가 팬과의 온라인 채팅에서 사용한 '웅앵웅'이라는 표현이 요 며칠 뜨거운 논란이 되고 있다. 필자는 '웅앵웅'이라는 말을 관련 기사에서 처음 접했는데, 지식백과의 뜻풀이를 옮기면 '웅앵웅'은 웅얼웅얼과 비슷한 용도로 쓰이는 신조어로, 아무 말이나 중얼대는 것을 표현하는 의성어다. 자신의 논리가 막혔을 때 논리적 반박을 하는 대신 상대방의 발언을 무시하고 원색적 비난을 하는 용도로 주로 사용한다고 한다. 최근 '웅앵웅'이 남성 혐오 사이트에서 사용되면서 '혐오 표현'으로 인식되기도 하는데, 유명 걸그룹 멤버가 이 단어를 사용하자 '혐오표현' 논란이 일어난 것이다. 


사실 이러한 '혐오 표현' 논란은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서 흔한 일이 되었다. 2010년대 초반 이후 특정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여성, 성 소수자, 장애인 등에 대한 적대적 감정, 비방, 폄훼 등이 특정한 언어 형태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혐오 표현'으로 지칭되어온 그러한 언어 표현들이 특정 인터넷 커뮤니티 내에서뿐만 아니라 일상 언어로 확대, 재생산되면서 '혐오 표현'은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었다. 제러미 월드론은 'The Harm in Hate Speech'에서 '혐오 표현'은 공격 대상인 소수자 구성원뿐 아니라 공동체의 다른 사람에게도 수많은 메시지를 보내고, 이러한 메시지를 사회구조의 일부로 만든다고 하였다.

필자가 일상생활에서 가장 흔히 접하는 '혐오 표현'은 '맘충'이라는 말일 것이다. 친구들의 모임에서 '맘충'을 자주 듣게 되는데, 모임에 아이와 함께 나온 친구들은 아이가 소리를 지르거나 음식을 쏟으면 주변을 의식하면서 "'맘충' 소리 들을까봐 겁이 난다"고 말하곤 한다.

'맘충'이라는 말이 널리 사용되면서 아이를 가진 친구 중 몇몇은 공공장소에 아이와 함께 가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거나, 모임 장소를 정할 때 좋아하던 카페와 식당이 아닌 본인의 집을 선호하게 되었다. 차별적인 현실과 사회적 배제 속에서 '혐오 표현'에 대항하기보다는 침묵과 수용을 택한 것이다. 이는 '혐오 표현'에 갇혀버린 우리 사회의 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듯 '혐오 표현'은 특정 대상에 대한 우리 내부의 편견, 혐오를 분출시켜 표현함으로써 밖으로 드러나게 한다. 이러한 '혐오 표현'이 지속적으로 사용되고 확대, 재생산되면서 '혐오 표현'이 보내는 메시지가 차별과 적대를 조장하고 선동할 수 있다.

'혐오 표현'이 차별을 조장하는 것에서 나아가 물리적 폭력, '혐오 범죄'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도 발생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이 '혐오'의 시대를 그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다. 우리 모두가 '혐오 표현'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또 다른 차별과 폭력으로 이어지기 전에 의식적으로 소수자에 대한 편견, 적대적 감정, 증오 등을 존중과 이해로 바꾸고자 노력해야 한다.

또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혐오 표현' 규제 방안 마련, 소수자에 대한 인식 개선 교육 등 사회적 차원에서의 장치도 필요하다. '혐오'의 시대에서 나도 언젠가 '혐오 표현'의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 속에서 살고 싶지 않다면 모든 개인과 집단이 존중받는, 차별 없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면 지금 당신이 사용하는 '혐오 표현'부터 멈추어 보자.

김수정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BK사업단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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