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3단계)

[우리말과 한국문학] 성별 비대칭적 가족 호칭과 가족 문화

2020년 ssy0805 21-03-03 503

제목: [우리말과 한국문학] 성별 비대칭적 가족 호칭과 가족 문화

매체: 영남일보

일자: 2020-01-16 

전문: 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200115010002587


성별 따라 불균형한 호칭어
과거 남성 중심 문화서 비롯
누군가 불쾌하고 불편하면
전통이라도 대안 마련 필요
평등한 가족문화의 첫걸음
 


설이 얼마 남지 않았다. 명절이 되면 평소 왕래가 없던 친척들을 만나 대화를 하게 된다. 대화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을 불러야 할 때 난감한 상황이 생긴다. 남편의 사촌동생을 '도련님' '아가씨'라고 불러야 하는데, 20대 초반의 사촌동생들을 그렇게 부르려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도 그렇게 부르는 게 맞다 하여 '도련님' '아가씨'라고 불러보지만, 마음속으로는 다음에는 말을 붙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이가 훨씬 많은 내게 '도련님' '아가씨'라고 불린 사촌동생들도 얼마나 부담스러웠을까. 평소 왕래가 별로 없어 어색한 사이인데, 호칭 때문에 더욱 어색해졌다. 부르는 사람도, 불리는 사람도 모두 불편하다면 호칭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여성은 남편 쪽 가족들에게 나이가 어리더라도 '도련님' '아가씨' 라는 존칭을 하지만, 남성은 아내의 동생에게 '처남' '처제'라고 부른다. 그리고 '시댁'(媤宅) '처가'(妻家)라는 단어에서 보듯이, 시가는 '시댁'으로 높이고, 처가는 높이지 않는다. 성별에 따라 단어가 불균형하게 쓰이는 것이다. 시가 쪽 사람들만 높이는 성별 비대칭적인 가족 호칭은 과거의 남성 중심 가족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성별에 따라 비대칭적인 것도 문제이지만 너무 존칭으로 불리는 것도 부담스럽고, 이런 부담스러움은 대화를 꺼리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한쪽만 높여 부르는 성별 비대칭적 가족 호칭을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되어, 작년 여성가족부에서는 새로운 가족 호칭을 제안했다. 새로운 대체 표현 중 하나가 '도련님' '아가씨' '처남' '처제' 대신 '이름+씨' 또는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부르던 호칭 대신 이름을 부르는 것이 처음에는 영 어색할 것 같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써오던 호칭어를 없애는 것을 전통이나 한 가문의 관습을 무시하는 것으로 생각해 반감을 갖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에 따라 언어 또한 바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언어적 표현으로 사고가 고착화되거나 강화된다면 인위적으로 바꿀 필요도 있다. 언어학자인 사피어와 워프는 언어가 인간의 사고를 규정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의식하고 있지 않지만, 언어 자체가 강제력이 있어 사람들의 경험과 사고방식을 규정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반론도 있으나, 언어와 사고가 서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하다. 성별 비대칭적인 가족 호칭어의 사용은 남성 중심의 가족문화를 강화할 수 있고, 이런 불균형적인 호칭어를 개선한 언어적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모두가 배려받고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것이 옳고 그르다의 문제가 아니라, 누군가가 그 호칭 때문에 불쾌하고 불편하다면 전통이라도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전통이라서 예전부터 그렇게 사용해 온 것인데 굳이 대체 표현을 써야 하나, 굳이 정부가 나서서 호칭어를 개선해야 하나 라고만 생각하기보다, 지금까지 써왔던 성별 비대칭적인 가족 호칭에 문제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얼마 안 있으면 설이다. 다들 즐거운 명절을 보내면 좋겠지만, 시가 중심의 불평등한 가족 문화로 마음 상하는 경우도 많다. 서로 배려하고 평등한 명절 문화를 만드는 데도 가족 호칭이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번 설에 가족, 친척들을 부를 때 누군가 불편한 것은 아닌지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좋겠다. 이런 관심과 문제의식이 명절뿐만 아니라 평등한 가족 문화를 만드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홍미주 경북대 교양교육센터 강의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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